
지난해 10월 소풍가고 싶다던 8살 여자아이가 계모의 무자비한 폭행에 숨진 '서현이 사건'으로 울산지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질 정도로 가해진 잔혹한 폭력성에 공분했고, 2011년부터 지속된 학대에서 좀 더 일찍 아이를 구하지 못한 자책들이 인터넷과 SNS 등에 넘쳐났다.
이 사건으로 울산을 비롯한 전국의 국민이 참여한 '하늘로 소풍간 아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졌다. 계모 박모(40)씨에 대한 엄벌을 청원하는 1만1000여명의 탄원서도 울산지검에 전달됐다.
지난달 17일에는 살인죄로 기소된 박씨에 대한 첫 공판이 울산지법에서 열렸다.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에는 아동학대자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아동학대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2013년이 마무리됐음에도 여전히 가쁜 숨 조차 고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성민이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모임.
23개월 된 성민이는 생일을 하루 앞 둔 2007년 5월 17일 울산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배가 심하게 부푼 채 차가운 시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성민이를 부검한 부산대학교 법의학연구소가 밝힌 직접적 사인은 '외부충격에 의한 소장파열로 인한 복막염'
아이의 얼굴과 온몸에서 멍과 손톱자국 등 학대로 의심되는 수 많은 상처들이 발견됐다. 고사리같은 손에서는 가해자의 폭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다 생긴 방어흔도 나왔다.
어린이집 원장 부부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고통스런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던 성우는 후유증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어린이집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의 증언도 이어졌다. "새벽에 어린이집에서 어린아이가 심하게 울어대서 경기하는 줄 알았다"
당시 부검의는 "잘려진 장에서 나온 이물질로 인해 복강내에서 염증이 진행, 나중에 패혈증으로 온몸의 장기들이 기능을 잃어가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소견을 밝혀 성민이가 수일 간 극심한 고통을 겪다 숨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는 부검의와 법의학 박사들의 소견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성우의 진술도 증언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대구지법 경주지원은 2007년 11월 성민이가 피아노 위에서 놀다 떨어져 숨졌다는 원장 부부의 주장을 받아 들여 검찰이 기소한 상해치사죄 대신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이들을 처벌했다.
법원은 원장에게 징역 1년, 원장 남편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항소심은 일부 학대를 인정해 원장에게 징역 1년6월, 원장 남편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후 원장은 1년 정도 수감생활을 마치고 조기출소했다.
죄값에 비해 너무 부당하게 적은 형량이라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성민이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성민이 모임은 매주 경주지역 학원가 등을 정기적으로 돌며 가해자가 다시 학원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받고 있다.
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과 함께, 조만간 재수사를 위한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 온라인 청원도 진행할 계획이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헌법에 명시된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 때문이다.
이미 업무상 과실치사로 형사처벌을 받은 원장부부에 대해 다시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박주영 울산지법 공보판사는 "지속적인 횡령이나 폭행죄의 경우, 별개 사건이 나중에 추가 기소되는 경우는 있어도 과실치사로 처벌받은 사건을 다시 다른 죄목으로 재수사해 처벌하는 것을 우리 헌법은 허용하지 않는다"며 "재심청구 또한 억울한 피고인을 위한 권리이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성민이 사건에 대해 다시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민이 아버지를 도와 헌법소원 일을 돕고 있는 이호성(40·경기도 이천)씨는 "우리 모두 불가능에 도전하는 싸움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동학대는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에 결코 남의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스로를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아동학대의 경우, 가해자들이 잘못을 감추려고 하면 얼마든지 쉽게 숨길 수 있다. 이런 문제점 개선을 위해 아동폭력의 피해자 가족들도 재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의미에서 헌법소원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