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20년째인 뮤지컬배우 성기윤(40)은 10일 저녁 7시30분 회차로 1000회 공연하는 뮤지컬 '맘마미아!'를 한번도 관람하지 못했다. '맘마미아!'를 보러 온 1000명 이상의 관객을 1000번 봤을 뿐이다.
성기윤은 8일 공연으로 이 뮤지컬 무대에 997회 오르면서 한 뮤지컬 1000회 근속 출연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게 됐다.
1999년 영국에서 첫선을 보인 '맘마미아'는 스웨덴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젊은날 아마추어 그룹의 리드싱어였으나 지금은 작은 모텔의 여주인이 된 '도나'와 아빠 없이 성장한 스무살 딸 '소피'가 주인공이다. 소피가 약혼자 '스카이'와 결혼을 앞두고 아빠일 가능성이 있는 세 명의 남자에게 청첩장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그린다.
한국에서는 2004년 1월17일 첫 공연했다. 성기윤은 이 때부터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지금까지, 소피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세 남자 중 샘과 빌 역을 번갈아 맡으며 하루도 공연을 빠지지 않았다. 1000석 이상의 극장에서 공연된 대형 뮤지컬로는 최단기간 1000회를 돌파하는 '맘마미아!'의 중심 축이다.
성기윤은 "'내가 참 열심히 달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켜온 습성이 밴 것 같다"는 게 1000회 개근의 비결이다. "최근 제 프로필을 정리해봤어요. 처음에 앙상블로 참여하고 그 다음으로 메인에 참여하는 등 여러 번 출연한 작품이 '듀엣'과 '갬블러', '시카고', '렌트', '라이프' 등 다섯 편이나 되더라고요. 저는 깊이 아는 것이 좋아요. 한 작품 한 작품을 그냥 지나치는 건 싫더라고요."
같은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하는 것이 지겹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공연을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지더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작품에 출연하면 할수록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됐다"며 "진짜 맛을 알아가는, 된장을 숙성시키는 과정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껄껄거렸다.

배우는 결국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두드러지거나 스타성이 있는 배우보다는 작품에 녹아 들어가 그 안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요리와 뮤지컬을 비교하기도 했다. "닭볶음탕을 만들 때 닭이 중요하지만 닭이 전부는 아니에요. 감자도 있고 파도 있고, 그런 것이 어우러져 맛을 내는 거죠. 닭볶음탕이 닭의 맛만은 아니라는 거죠. 뮤지컬 역시 마찬가지에요.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라 배우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지만 배우도 공연 전체가 아닌, 재료 중 하나일 뿐이거든요. 관객들이 공연을 볼 때 배우 말고도 분명 다른 요소로도 감동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하하하."
첫 공연 때 아버지뻘을 맡으면서도 딸뻘인 소피 역의 여배우와 나이차가 불과 세살밖에 나지 않았던 성기윤은 "작품에 누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고 떠올렸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의 '거의 다 왔네'라는 말만 믿고 좀 더 나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고도 회상했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배역의 나이에 가까워졌고 할 때마다 그 때 갖고 있던 생각들을 다 시도해봤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1000회 근속에는 위기도 있었다. "몸이 몹시 아파 대기실에서 이불 덮고 달달 덜고 떨다가 무대에 오른 적도 몇 차례"라며 "식은땀이 났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기억했다. "사실 몸이 다쳐서 공연을 하지 못한 적은 없었어요. 운동 외에는 몸을 잘 안 움직여요. 자기관리를 한다기보다는 게을러서죠. 어렸을 적에 무용을 통해 몸을 충분히 써본 경험이 있어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다치지 않는 지를 알기도 하고요."
올해부터 부산 동서대 뮤지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성기윤은 "앙상블로 시작, 단역·조연을 거쳐 주연으로 서는 내 나이대의 배우가 많지 않다"며 "그래서 의무감이 든다"고 고백했다.

"요즘 뮤지컬업계는 스타마케팅이나 오디션이 활발하잖아요. 신인이 처음부터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죠. 이쪽 일을 하려는 어린 친구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가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될 거예요. 스타가 되고 싶기보다는 뮤지컬배우로 성장하고 싶은 친구들도 많을 텐데 말이죠. 이 나이에 이 장르에 몸 담고 있는 만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와 같은 경우를 지키고 싶은 마음도 있죠. 날이 갈수록 이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는…."
자신과 같은 케이스는 쉽지 않다는 점도 안다. 이런 문화를 정착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 역시 인정한다. 그래도 "나 같은 경우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00회 이상 공연하는 뮤지컬과 1000회 이상 출연하는 배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저와 같은 상황이 특별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편,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는 1000회 공연 당일 성기윤에게 개근상을 주는 시상식을 연다. 뮤지컬은 내년 2월26일까지 공연한다. 성기윤을 비롯해 뮤지컬배우 최정원, 전수경, 이경미 등 이 작품의 터줏대감들이 중심을 이루고 가수 이현우가 힘을 보탠다. 4만~11만원. 신시컴퍼니. 02-577-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