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난 4월 미국 LA행 항공기 내 B씨는 옆 좌석에 승객이 앉자 승무원을 불러 '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며 마구 욕설을 했다. 이어 B씨는 면세품 구입과정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해당 승무원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잡지책으로 승무원의 얼굴을 때렸다.
#2. 지난해 10월 방콕발 인천행 항공기에 탑승한 학생 C씨는 비행공포증이 있다며 승무원에게 "나 무서우니까 좀 안아줘!"라고 요구했다. 승무원이 이를 거절하자 "나 XX 취급하는 거야? XX 취급하는 거 아니면 전화번호 가르쳐 줘. 오늘 저녁에 만날래?"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최근 잇따라 항공사 승무원에 대한 폭언·폭행 사건 등 도를 넘은 행동 등으로 여대생들의 선망 1순위 직업인 승무원들의 근무환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기내 폭력과 폭언 등이 빈번하게 발생, 항공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런 승객들은 최근 인터넷으로 인해 SNS 등 정보의 채널이 다양해져 과도한 피해보상이나 거짓 피해 신고 등의 악성 민원을 제기하며 항공사를 옥죄기도 한다.
◇승무원 10명 9명 "폭언 시달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 7일부터 3일 간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공항종사자와 승무원 3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0.1%가 '승객으로부터 폭언 또는 인격훼손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더욱이 응답자의 49%는 '1~2일에 1번꼴로 폭언을 당한다'고 답했으며, 2명 중 1명은 매일 또는 하루걸러 욕설과 인격훼손 발언 듣는다고 답했다.
이에 대한 대처로는 서비스업종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냥 참는다'는 답변이 73.3%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22%는 '상사에게 보고한다'고 대답했다.
응답자들이 바라는 대책으로는 41.8%가 '가해자들의 형사 처분'을 원했다. 기타 응답으로 더 강력한 처벌 입법을 원한다는 의견도 9.2%나 돼 사실상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김무성 의원은 "공항과 항공기에서의 폭언과 폭력이 몇 년째 빈발하고 있음에도 관련 기관에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며 "관계부처인 국토부의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항공업계 "관련법 미비, 법적 대처가 힘들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서비스를 중시하는 항공 산업의 특성상 애써 웃으며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폭행·협박 또는 위계로써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해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을 해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을, 거짓된 사실의 유포, 폭행·협박 및 위계로써 공항운영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내질서 방해 행위로 인한 항공기 운항 차질이 발생할 경우 이러한 법률적 근거 아래서는 법적 대처가 힘들게 현실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항공사 운항 지연에 따른 피해 금액과 승객들이 스케줄 지연에 따라 입은 유·무형의 피해를 산정해 구상권 청구 등 강력한 대응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기내 질서를 방해해 항공기 운항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경우 현장에서 바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거나, 추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항공법에 따르면 기내 난동을 피우는 취객에게는 징역 20년 이하나 1~2만 달러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승무원들이 난동 승객을 실력으로 제압하고 도착 때까지 포박과 격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승무원의 지시에 불응하는 승객에게 최고 2만5000유로까지 벌금형을 내릴 수 있고, 영국에서도 승무원 폭행 때 피해 정도에 따라 벌금 5000파운드(약 860만원)를 부과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최근 발생하는 기내질서 방해 행위들은 명백한 불법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법적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러한 행위들이 항공기 지연을 발생시켜 타 승객들과 항공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강력한 조치와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법보다는 승객 의식 전환이 우선
최근 연이어 발생한 승무원과 관련된 폭언 폭행 등의 사건을 살펴보면, 승무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문제보다는 승객들의 기내 난동 및 무리한 서비스 요구 등이 대부분이었다. 즉, 승객들의 기내질서 확립 의지가 중요하다.
실제로 국내 항공사의 서비스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여행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월드 트래블 어워즈 2012'에서 '최고의 서비스상'과 '세계 최고의 혁신 항공사상'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환츄스바오 제4회 여행업계 대상 시상식에서도 '중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최고 외국 항공사 Top3'에 4년 연속 선정됐다.
아시아나항공도 세계적인 여행전문잡지인 미국 비즈니스 트래블러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 고객 서비스상'은 물론 중국 여행 전문지 트래블앤레저(뤼유슈샌) 주관으로 열린 '2012 세계여행대상'에서 최고 기내서비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항공사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자세를 낮춰 아이컨텍(eye-contact)을 하며 서비스를 하고, 승객들의 즐거운 여행을 위해 헌신한다. 승객들의 힘든 요구나 짓궂은 장난이나 무리한 서비스에도 승무원들은 시종일관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승무원의 객실업무 미숙, 정비 불량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항공사 측에서 따끔한 지적이나 조언이 필요하지만, 승무원에 대한 인신공격 및 무리한 요구 등 승객들이 승무원을 바라보는 의식수준도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과 벌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의식 전환"이라며 "모든 항공기의 승객들은 승무원이 서비스 외에 안전을 목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손님은 무조건 왕'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려는 승객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