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배우 오달수(45)는 그 동안 수많은 한국 영화에서 때로는 소금이 되고, 때로는 설탕이 돼 작품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었다.
2011년부터만 봐도 약 479명을 모은 코믹 사극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약 1300만명을 기록한 범죄 액션 ‘도둑들’(2012), 약 165만명을 들인 ‘공모자들’(2012) 등 히트작뿐 아니라 액션 ‘푸른소금’(2011), 스릴러 ‘헤드’(2011), 액션 ‘R2B: 리턴 투 베이스’(2012), 휴먼 드라마 ‘미운오리새끼’(2012), 코믹 액션 ‘자칼이 온다’(2012) 등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남다른 개성을 자랑한 영화들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이처럼 많은 영화에 등장했지만 한 번도 그를 인터뷰하지 못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성격 탓이다. 이런 오달수가 모처럼 ‘7번방의 선물’ 개봉 전 여러 미디어와 1대 1로 마주 앉았다.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주연 ‘키무라 타쿠아’를 맡아 한창 바쁜 중인데도 그랬다.
이 영화의 주연은 오달수가 아닌 류승룡(43)이다. 오달수는 이번에도 조연이다. 방장 ‘소양호’다. 방장이라 해도 비중은 김정태(41)나 박원상(43), 정만식(39)보다 두드러지지 않는다. 어쩌면 특별출연한 정진영(49)보다 낮을 지도 모른다. ‘은자’ 오달수는 왜 스포트라이트 아래 섰을까.
“이환경 감독을 돕고 싶어서”라는 답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박종원(53) 감독의 ‘송어’(1999) 조감독 출신인 이환경(43) 감독은 ‘그놈은 멋있었다’(2004), ‘각설탕’(2006) 등으로 호성적을 거뒀으나 준비하던 후속작의 메가폰을 타의에 의해 놓치고 말았다. 이후 절치부심, ‘챔프’(2011)를 내놓았으나 호평과 달리 흥행에는 실패했다. 2008년부터 틈틈이 써오던 시나리오로 선보인 재기작이 ‘7번방의 선물’이다.
오달수는 “이 감독은 정말 참해요. 곱고 착하죠”라며 “그런 사람한테 호감이 왜 안 가겠어요.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도와야죠. 잘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달수의 소망이 하늘을 움직인 것일까, 인터뷰 당시만 해도 알지 못했지만 지난달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일만인 10일 마침내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오달수는 이 영화를 선택한 계기를 “마음이 동했다”라고 표현했다. “저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마음을 당기는 것을 선택해요. 울리든지 웃기든지, 기쁘든지 슬프든지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관객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거든요. 소양호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어요. 카리스마 넘치는 교도소 방장이 사실은 낫 놓고도 기역자를 모르는 일자무식이라는 입체적인 면도 마음에 들었구요.”

앞서거니 뒤서거니 류승룡을 비롯해 정진영, 김정태, 박원상, 정만식, 김기천(56) 등 함께 할 배우들이 면면을 드러냈다. 연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다. 첫 원톱 주연을 맡은 류승룡이 그들을 두고 “절벽이나 낭떠러지에 서있는데 그 밑에 촘촘한 그물처럼 튼튼한 안전장치가 돼 있어서 편하게 몸을 던지면 됐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오달수는 모든 것을 류승룡의 공으로 돌린다.
“(류)승룡이의 겸손이죠. 저는 오히려 놀라웠어요. 승룡이가 용구를 그렇게까지 만들어올 줄은 몰랐거든요. 승룡이가 만들어온 용구를 보면서 ‘아, 이제 됐구나’ 싶었습니다. 용구라는 캐릭터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배우의 욕심을 적당히 눌러가면서 리얼하게 해야 하는, 그래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승룡이는 해냈어요. 아니, 승룡이니까 가능했던 거죠.”
이렇게 류승룡을 격찬하는 오달수이지만 수많은 기사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연기파’, ‘신스틸러’, ‘명품조연’, ‘감초연기’ 등이 따라 붙는다. 종류는 가지가지이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뛰어난 연기력’이다.
오달수는 손사래를 친다. “부끄럽죠. 그동안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역할을 했을 뿐이에요. 다 복이고, 운이 좋았던 거죠. 전혀 그렇지 않은 캐릭터인데 제가 만들어냈다기보다 저는 그저 대본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감사하기도 하고, 재수 좋은 놈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앞으로 그런 수식어는 그만 붙이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원하는 수식어가 있을까. 기다렸다는 듯 즉각 나온다. “배우에요. 명품배우, 연기파 배우…, 다 필요 없어요, 그냥 배우입니다. 배우라고 불릴 수 있다면 최고로 좋을 것입니다. 배우(俳優)의 배(俳)는 ‘사람 인(人)’ 변에 ‘아닐 비(非)’를 쓰죠. 사람이 아닌 것, 사람이 함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진짜 배우라 불리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저같은 사람은 그냥 연기자라고 해야지 배우라고 할 수는 없죠. 앞으로 죽기 전에 진짜 배우가 됐다고 선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소원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달수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의 덕목은 무엇일까. “상대 배우의 연기를 잘 받아주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말은 쉽지만 힘든 것이죠. 그렇게 잘 받아주면 상대 배우도 연기를 잘 할 수 있거든요. 두 번째는 설득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상대 배우를 설득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관객을 설득해야 하죠. 이처럼 잘 받아주고 제대로 설득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인데 늘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있답니다.”

오달수는 이렇게 자신을 낮췄지만 영화계 사람들의 입을 빌리면 그는 과할 정도로 덕목을 실천하고 있다. 실제로 이 감독은 “보통 자신의 신이 끝난 뒤 상대 배우가 연기할 때 리액션을 열심히 해주는 배우만 해도 좋은 배우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런데 오 선배는 그 이상이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신에서 자신이 지나가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지 않는데도 일부러 다시 지나가서 다른 배우들이 좀 더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더라. 지금까지 그런 배우는 처음 봤다”고 치켜세웠다.
‘7번방의 선물’은 관객들에게 가족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그래서인지 “고맙다”는 감상평이 주를 이룬다. 이런 마음은 주역인 오달수 역시 마찬가지다. “저도 용구처럼 딸을 가진 아빠로서 딸에게 좀 더 잘해줘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무뚝뚝한 아빠거든요. 딸과 전화도 잘 안 하는데 앞으로는 전화도 자주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비단 오달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빠들은 대부분 딸, 아니 아들에게도 살갑게 대하지 못한다. 무뚝뚝해서라기보다는 쑥쓰러워다. 올해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딸에게 앞으로 연기를 권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달수에게서는 의외로 “아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힘든 것을 잘 알기 때문에”라는 이유다.
오달수는 연기 전공자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꿈도 꾸지 않았다. 대학도 미대(동의대 공업디자인)를 다녔다. 대학 시절 연극 팸플릿 등을 만드는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소극장에 배달을 다니다 ‘수공예처럼 창조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면서 비로소 연기에 입문했다. 2003년 박찬욱(50)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에 의해 이가 뽑히는 ‘철웅’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릴 때까지 10년 넘게 배고프고 추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렇지만 후회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딸이 연기를 하는 것만큼은 결사 반대다. “어렸을 때 제 딸이 아빠처럼 연기를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기에 그런 꿈을 꾸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어요. 커서 또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요? 그때도 뜯어말릴 겁니다. 살아있는 한 못하게 할 겁니다.”
표현만 못할 뿐 역시 품고 있는 부정은 천 마디 말로도 다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아빠도, 이 인터뷰를 읽고 있는 당신의 아빠도 마찬가지였고,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