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전쟁이 극한(極限)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의 기술 탈취와 인재 흡수, 미국의 ‘마가(MAGA)’ 명분의 관세 폭탄과 투자 강요 및 기술 유입 압박은 세계 경제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으며, 미·중 양국 사이에 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이 가일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반도체를 때리면, 중국은 희토류를 막으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일로(激化一路)로 빠져들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 상황에 봉착(逢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제국 재건’에 나선 미국과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높여가는 중국의 양면 공세에 밀려 한국 경제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기습적으로 ‘희토류 갈등’을 재점화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를 한국기업이 고스란히 입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희토류를 다시 통상(通商) 무기화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0월 9일 중국산 희토류 제품과 관련 기술에 대한 포괄적인 ‘수출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수출통제 조치’의 핵심 골자는 수출통제 적용 대상이 되는 희토류 품목을 확대하고, 희토류 가공 기술까지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했다. 미국이 희토류의 자체 생산을 위한 투자 확대에 나서려 하자 관련 기술의 이전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외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중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된 제품은 수출통제를 적용한다. 아울러 외국 군수 기업은 수출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했다. 군수용이 아니더라도 14나노미터(㎚) 이하 시스템반도체나 256층 이상 메모리반도체, 그리고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인공지능(AI) 연구·개발용 희토류의 수출 신청은 개별 심사하기로 한 점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조처들은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하면서 미국산 기술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제품까지 대상에 넣은 것을 거의 그대로 본뜬 것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70%와 희토류 가공 능력의 90%를 점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현지 시각)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에 대응해 오는 11월 1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맞대응에 나섰다. 지난 4월 미·중 양국이 서로 100%를 넘는 초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관세 전쟁’을 벌인 이후 고위급 협상으로 일단락됐던 미·중 무역 갈등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중국이 무역과 관련해 극도로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됐다.”라며 이같이 발표했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평균 관세율은 약 55% 수준으로, 여기에 100% 관세가 추가되면 중국산 제품은 평균 155%의 관세를 적용받게 될 전망이다. 이어 “현재 검토 중인 정책 중 하나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인상”이라고 언급했고, 불과 6시간 뒤 실제로 ‘100% 추가 관세’ 방침을 공식화했다.
또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오가는 중국 항공사의 러시아 상공 비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월 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교통부는 이날 미국 항공사와 중국 항공사 간 불균형한 경쟁 요인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 같은 금지령을 제안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2022년 3월 러시아 항공사의 미국 상공 비행을 금지했고, 이에 러시아도 미국 항공사의 러시아 상공 비행을 금지했다. 중국 항공사들은 러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갈 수 있어 비행시간을 단축하고 연료를 덜 소비하는 등의 우위를 누려왔다고 미국 항공사들이 그간 불만을 제기해 왔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이 미국을 겨냥해 방산·첨단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규제를 확대한 직후 나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미국 교통부는 중국 항공사에 이번 제안에 답변할 시간을 이틀 부여했으며, 최종 명령은 이르면 11월에 발효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도 추가 대응에 나서면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이번에는 중국이 “두렵지 않다.”라며 정면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다시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의 ‘경제 안보’ 명분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지키겠단 입장을 분명히 취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0월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이 일방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단호히 맞대응해 국가의 정당한 권익을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은 이번 사안을 주시하고 있다.”라며 “지난 9일 발표한 희토류 등 관련 물품의 수출통제 조치는 법에 따라 수출통제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정상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상무부는 “오랫동안 미국은 국가 안보 개념을 남용해 수출통제를 무기화하고, 중국을 상대로 반도체 장비와 칩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해 일방적이고 장기적인 제재를 취해왔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중국의 선공으로 시작된 중국산 희토류 제품과 관련 기술에 대한 포괄적인 ‘수출통제 조치’는 이달 말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성격이 매우 강하다. 현재 미·중은 미국의 고율 관세 적용을 두 차례 유예하며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희토류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중국 의존도가 50%에 이른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면 한국 주력산업도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2년 전부터 희토류 수출통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수출은 정상적으로 허가를 해주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과 ‘한·중 수출통제 대화’ 채널을 개설해 관련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정부는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국내 기업이 피해받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리와 협조 요청을 해나가야 한다.
이번 중국의 포괄적인 ‘수출통제 조치’는 지난 4월 발표한 통제를 명확히 하고 우회 수출 금지 등으로 확대한 것으로, 제3국의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을 차단하려는 미국 움직임에 맞서는 성격이 짙다. 특히 14나노미터(㎚) 이하와 256층 이상의 첨단 반도체에 들어가는 희토류는 ‘사안별 승인’ 대상으로 묶였다. 이로 인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외신은 미국이 제3국에 부과하는 ‘해외 직접제품규칙(FDPR)’의 ‘중국판’이라고 보도했다. 문제는 희토류 채굴의 70%, 분리·정제의 90%, 자석 제조의 93%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 4월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의 수출을 통제했을 당시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80% 이상으로 나타났다. 수출통제가 계속된다면 산업 전반에 걸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가공 제품과 희토류 자석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주요 수출품인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레이더 같은 첨단 군사 장비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이라 국내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가뜩이나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국내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미국을 향한 반격에도 덩달아 피해를 보는 ‘이중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다. 지난 2023년 중국의 갑작스러운 요소 수출 중단 충격 이후 우리 정부는 주요 해외 원자재에 대한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 왔으며, 중국산 희토류 원자재 비중을 절반 이하로 낮췄게 그래도 다행이지만 고성능 자석용 희토류 원소의 정제 기술은 사실상 중국이 독점하고 있어, 안타깝게도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세계 각국은 전략 광물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는데 진력하고 있다. 미국은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 때부터 미국 내 희토류 생산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련 기업의 지분까지 확보해 정부 개입을 강화했다. 일본은 이미 2010년 중국과 센카쿠열도 영토 분쟁을 겪은 뒤 희토류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희토류 탈중국 정책을 꾸준히 펴왔다. 산업에 꼭 필요한 희소성이 큰 소재일수록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국가 차원의 정책이 절실한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미·중 패권 다툼으로 정치·경제적 불안정이 큰 만큼 다른 나라의 선의에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미국이 반도체 기술 통제와 관세 압박을 무기로 쓰는 데 맞서, 중국은 희토류로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미·중 패권 경쟁이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도 조달처를 중국 이외 다른 국가들로 다변화하고 국내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차제에 정부는 공급망 자체를 업그레이드해야만 한다. 우선 중국을 대체할 공급처부터 찾아야만 한다. 일본 정부는 스미토모 코퍼레이션과 손잡고 호주에서 희토류를 채굴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정제하는 발 빠른 대체 공급망을 구축했고, EU도 말라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광산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미국은 마운틴패스 희토류 광산 재가동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EU에서 약 263만t(톤)의 무관세 쿼터를 적용받았으며, 일부 품목은 선착순 방식의 글로벌 쿼터로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철강 수출액 332억 9,000만 달러(약 47조 원) 중 대(對) EU 수출이 44억 8,000만 달러, 대미 수출이 43억 5,000만 달러로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중국 간 희토류 원소(REE │ Rare Earth Elements) 생산을 둘러싼 경쟁이 풍부한 자원을 지닌 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격화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전기차, 최신 스마트폰, 풍력 터빈, 정밀 미사일 등 다양한 기술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둘러싼 열강 간 경쟁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됐다. 이는 마치 식민지 시대의 아프리카 쟁탈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목도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광물이 풍부한 아프리카 지역으로 몰려들어 권리를 주장하고 거래를 체결하며 아프리카의 경제적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희토류 재활용과 대체 기술 개발도 급선무(急先務)다. 애플은 올해 말까지 제품에 재활용 희토류 사용을 100%로 올리려 한다. 한국 기업들도 재활용 확대와 대체 소재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프랑스는 전기차 모터·풍력발전기에서 사용된 희토류를 재활용하고 있으며, 독일 기업 ZF는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희토류가 필요 없는 전기차 모터를 개발하고 있다. 한·미·일 공급망 협력체제 구축도 논의해 볼 만하다. 핵심 소재를 특정국이 무기화하지 못하도록 다자간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도 결단코 나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 경제는 미·중·EU·일본발(發) 쓰나미에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지난해 제정된 ‘공급망 3법’을 즉각 가동해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여야 대치로 국회 상임위 소위에 계류 중인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 특별법)’도 서둘러 처리해야만 한다. 이 법에는 탄소중립 기술 전환, 전력공급망 확충, 원료 안정화 지원 등이 담겨 있어서다. 긴급 전기료 지원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3년 새 산업용 전기요금이 76%나 올라 철강업계가 한계상황에 몰린 점을 결코 외면해선 안 된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통상 갈등이 새 분기점을 맞을 때까지, 정부와 여야는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 비상 대응에 선제적으로 나서야만 할 것이다. 한국기업 피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