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과 경찰이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과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 간부에 대해 초유의 이중수사를 펼치며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에서 유독 주목받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조희팔과 경찰청 황운하 수사기획관이다.
경찰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은닉재산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검찰간부의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꼬리를 잡게 됐다. 또 검찰과 경찰간의 수사권 갈등이 깊어질수록 관심을 끄는 인물이 바로 황 기획관이다.
황 기획관은 A검사 관련 첩보를 수집한 경찰청 범죄정보과와 그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지능범죄수사과를 관할하고 있다.
◇4조원대 다단계사기범 '조희팔'
조희팔 사건은 전국에 10여개 피라미드업체를 차리고 의료기기 대여업으로 고수익을 낸다며 2004년부터 5년간 4만~5만여명의 투자자를 모아 돈을 가로챈 국내 최대 규모 다단계 사기사건이다.
피해액은 대략 3조5000억~4조원으로 추정된다.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사기사건으로 꼽히던 JU그룹 사건 피해액인 2조1000억원을 훨씬 웃도는 규모다.
조씨가 총경급 간부 등 경찰 관계자들에게 사건 무마와 밀항을 부탁하며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 안팎에서 주목하기도 했다.
특히 검찰과 경찰의 초유의 이중수사를 벌이게 된 이유가 바로 조희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미 조씨 일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경찰관 여러명이 이미 사법처리와 징계를 당했다.
이번에는 조씨 측근과 현직 검찰간부간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제기돼 검찰과 경찰의 수사선상에 동시에 올랐다. 조씨 사건 수사책임자였던 대구경찰청 권모 총경은 조씨 등으로부터 9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 1월 파면됐다.
지난 9월에는 조씨 등과 유착돼 향응을 수수하고 직무를 유기한 대구경찰청 소속 정모(37) 경사가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구속됐다.
정 경사는 지난 2009년 5월15일부터 20일까지 연가를 낸 후 중국 연태시에서 조희팔과 공범 3명 등을 만나 함께 골프접대와 주류 등 수십만원 상당의 향응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 경사는 2008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대구경찰청 수사2계에 근무하면서 조희팔 등과 관련된 유사수신 사기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다. 이후 인터폴 적색수배를 하는 등 조희팔 유사수신 사기사건의 수사 담당자였다.
현직 검찰간부가 조씨 측으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역공에 들어갔다.
이번 수사의 직접적 계기가 된 A검사의 경우 경찰이 조씨 은닉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차명계좌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A검사는 수조원대 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조희팔 측근에게서 2억4000만원과 유진그룹 측으로부터 6억원 가량을 차명계좌로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A검사는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거래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은 A검사에게 소환통보는 물론 불응시에는 강제구인까지 검토하고 있다. 또 검사 2~3명을 추가로 수사선상에 올리면서 검찰조직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 검·경대결에도 주목받는 '황운하'
A검사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의 핵심인물은 바로 황 기획관이다. 경찰조직 역사 속에서 '황운하'라는 이름 석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작지 않을 듯하다.
바로 경찰 조직내에서 대표적인 수사권 독립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99년 6월 서울 성동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재직하던중 검찰에 파견된 소속서 경찰관들에게 복귀명령을 내렸다.
경찰관이 검찰에 파견돼 수사를 도와야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의 목소리가 일선 경찰서에서 공개적으로 처음 분출된 것이었다.
이후 수사권 조정의 기수로 상징처럼 된 인물이 바로 황 기획관이다.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을 겸직하면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 목소리를 대변했다.
올해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학위 논문도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비판하는 '영장청구권에 관한 연구'였다.
그러나 경찰수뇌부에도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황 기획관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많다. 지난 2006년 대전 서부경찰서장으로 재직하던 그는 경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지휘부가 수사권 독립에 미온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직후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됐다.
2007년에는 한화그룹 보복폭행사건에 대한 수사 축소 의혹과 관련해 이택순 경찰청장의 사퇴를 주장했다가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각종 인사에서 검찰은 물론 경찰 수뇌부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고 있다는 말이 경찰 안팎에 나돌았다. 이미 경찰대 1기 동기 중 치안정감까지 나온 상황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목을 내걸고' 직언을 하는 그에게 환호하는 이들도 적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