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대 국회 개원이 여야가 상임위원회 배분 문제를 놓고 극명하게 대립하는 탓에 이뤄지지 않고 있어 주요 민생법안들도 덩달아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19대 국회가 공식 시작된지 보름이 넘었지만 여야간 개원협상이 진척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장기 공전 가능성이 예상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중인 법률안은 모두 108건에 달한다.
이중 대부분의 법안들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 ▲전세자금 지원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무상보육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등 민생과 직결돼 있다.
이처럼 4·11 총선이 끝난 직후부터 여야는 민생 법안 제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이들 법안들이 언제 처리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12월 대선을 앞둔 여야가 상임위 배분문제를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19대 국회 원구성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19대 국회 역시 정쟁으로 인해 민생법안 신속처리라는 대의는 지키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야,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협상 진전 없어
19대 국회 공전의 최대 원인은 16개의 상임위 위원장과 2개의 특별위 위원장 자리를 여야가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당초 여야의 상임위원장 비율을 9대 9로 주장했던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10대 8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구체적인 상임위 배분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새누리당은 선진통일당의 몫이었던 경제분야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가 민주당에 넘어가면서 1개 상임위원장직을 민주당에 넘겨줘야 하게 되자 비경제분야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나 국방위원회를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국토해양위원회, 정무위원회를 1~3 지망으로 해 이중 하나를 양보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법제사법위원회를 넘겨주면 국토위를 민주당에 양보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지만 민주당은 법사위를 절대 사수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야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언론사 파업 처리에 대해 입장차도 확연하다.
민주당은 민간인 불법사찰의 국정조사와 언론사 파업에 대한 청문회를 요구한 반면 새누리당은 민간인 불법사찰의 경우 특검으로 끝내고 언론사 파업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청문회를 개최할 경우 야당이 정치 공세를 펼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다.
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이 주장한대로 특검 수용을 받아들이면 '정권 심판론'이란 프레임이 약해질 수 있다.
결국 현안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서로가 못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지만 국회를 공전상태로 몰아가며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개원문제 논의를 위해 그동안 몇 차례 회동을 가졌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민주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10일 여야 원구성 협상 상대방인 새누리당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를 '수첩수석'으로 지칭하며 좀 더 적극적인 협상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키도 했다.
그는 "계속 안 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 새누리당의 원구성 전략"이라며 "안 된다고만 하려면 차라리 결정권자인 박근혜 전 위원장이 직접 (협상장에)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원내수석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과 협상이 잘 안되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원구성을 할 것"이라는 원칙적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1992년 총선·대선 실시된 해 원구성에 125일 걸려
이같은 상황은 총선과 대선이 같은해에 실시된 지난 1992년에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14대 국회는 5월30일 임기가 시작됐지만 같은 해 6월29일에 개원을 했고, 원 구성은 125일이 지난 10월2일에야 가능했다.
14대 국회가 긴 시간동안 공전을 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19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상임위원장의 배분 문제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은 지방자치단체장선거실시문제 등을 놓고 원구성을 볼모로 야당과 대치상황을 만들었다.
또 야당도 현안에 대해 여당이 주장하는대로 받아들일 경우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해 버티기에 들어갔다.
14대 국회 여야는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잡기 위해 한치의 양보를 하지 않고 이른바 '남의 탓'을 하면서 정국을 대치국면으로 몰아갔다.
대선을 앞두고 상대당의 구태를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다.
때문에 19대 국회도 여야간 속내가 다른 탓에 자칫 장기공전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여야, 개원 서둘러 본연 임무 나서야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든지 19대 국회는 민생을 챙기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출발부터 불법국회가 됐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
문제는 주요법안들 처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지연되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야와 각 의원들은 합의 정신을 발휘해 우선적으로 원을 구성한 뒤 본연의 임무인 법안 처리에 본격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