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는 BBK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가짜 편지'를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에게 전달한 인물이 은진수(51) 전 감사원 감사위원이라는 정황을 포착, 사실관계 파악에 나선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일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를 고발인 겸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해 "은씨로부터 가짜 편지를 건네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홍 전 대표는 그동안 편지입수 경위에 대해 "편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누가 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검찰에서 해당 인물에 대한 정확한 신원을 지목한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 등에 따르면 당시 은씨는 홍 전 대표의 집무실을 직접 찾아가 가짜 편지를 놓고 갔다. 이후 이를 발견한 홍 전 대표는 지난 2007년 12월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 김경준(46·천안교도소 수감)씨의 'BBK 기획입국' 의혹을 제기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은씨는 2007년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과 함께 '클린정치위원회' BBK사건 대책팀장을 맡았다.
은씨가 활동했던 클린정치위원회는 BBK 사건이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자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이 만든 조직이고,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 홍 전 대표였다.
검찰은 은씨가 위원장이던 홍 전 대표에게 편지를 건네면 자연스럽게 외부에 공개될 것으로 판단, 홍 전 대표에게 편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편지를 입수한 홍 전 대표는 신경화(54·수감중)씨가 미국 교도소 수감 동료인 김씨에게 보낸 편지라며 내용을 공개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가짜 편지 배후로 김병진(66·전 MB캠프 상임특보) 두원공대 총장과 MB 손윗 동서인 신모씨 등 대통령의 측근들을 지목해왔다.
가짜 편지 대필을 지시한 양승덕(59) 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MB캠프의 상임특보였던 김병진 총장에게 편지를 건넸고, 이 편지가 홍 전 대표에게 전달됐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김 총장도 양 실장에게서 편지를 건네받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홍 전 대표는 가짜 편지 작성에 개입한 적이 없고 편지 폭로를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특히 신명씨나 양승덕씨, 김병진 총장은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이가 아닐 뿐더러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접 연락하거나 접촉한 사실이 없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홍 전 대표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가짜 편지 사건을 그대로 두면 DJ정부시절 '옷로비 사건'처럼 국민들의 의혹이 더 커질 것 같아 내가 직접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겠다고 했다"며 "검찰조사에서 편지를 놓고 간 사람을 지목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편지전달자가 누군지 확인해주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이어 "그 사람(편지 전달자)이 개인적으로 현재 불행한 처지에 있어서 내가 직접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며 "어차피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나서서 얘기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덧붙였다.
은씨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근무시절 부산저축은행 금융브로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올해 2월말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과 추징금 7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와 함께 편지작성 경위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거의 끝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 편지의 작성자로 지목된 신명(51·치과의사)씨가 친형인 경화씨와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지인인 양승덕(59) 경희대 관광대학원 행정실장을 만나 알려줬고, 양씨가 신씨에게 대필을 제안하면서 편지가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보면 실체가 없는 사건으로 지금은 '가짜편지'라고 결론 내리고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단계로 조만간 수사를 종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짜 편지'는 2007년 11월 김경준씨가 입국한 후 당시 한나라당이 청와대와 여당(대통합민주신당)을 상대로 BBK 의혹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김씨의 미국 수감 동료인 신경화씨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편지에는 "자네가 '큰 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청와대의 사주로 김씨가 입국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편지는 신경화씨가 아닌 동생 신명씨가 대필한 것으로 밝혀졌고, 신명씨는 지난해 이 사실을 시인하면서 가짜 편지 사건의 배후로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을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