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대 총선에서 시민·사회단체의 낙선운동은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개됐다.
참여한 시민단체는 2000곳에 이르렀고 이들이 내놓은 살생부만 100여개에 달했다.
2000년 총선 당시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총선연대가 처음 시작한 낙선운동은 이제 주요 선거 때마다 실시되는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낙선운동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낙선 후보 명단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2000년 총선에서 총선연대가 86명의 낙선 후보 명단을 작성했을 때 이 명단에 오른 후보들의 낙선율은 70%에 달했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 주요 단체들이 발표한 명단의 '명중률'은 이보다 크게 떨어졌다.
◇진보단체, 총선넷 중심으로 결집…與 후보 '정조준'
진보 성향 시민단체는 이전보다 더 조직적으로 낙선운동을 진행했다.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1000여개 단체가 모여 '2012 총선유권자네트워크(총선넷)'를 구성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4대강 사업, 의료 민영화, 무상급식 등 정책 이슈에 대한 찬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게 과거 낙선운동과는 달랐다.
총선넷은 여권 후보를 중심으로 '국회의원이 돼서 안될 55명의 후보'를 선정, 이 가운데 10명의 집중 심판 대상 명단을 발표했다.
집중 심판 대상 후보 10명 중 새누리당 서장은(서울 동작갑), 허준영(서울 노원병), 무소속 김석기 후보 등 30%만 낙선했고 새누리당 김종훈(서울 강남을), 민병주(비례대표), 이재오(서울 은평을), 정병국(경기 여주양평가평), 하태경(해운대기장을), 황우여(인천 연수구), 홍일표(인천 남구갑) 후보 등 70%는 당선됐다.
55명의 '심판 대상자' 중에서도 새누리당 홍준표(서울 동대문을), 정옥임(서울 강동을), 차명진(경기 부천소사) 후보 등 15명(27%) 만이 낙선했고 새누리당 이학재(인천 서구강화), 이한구(대구 수성갑), 남경필(경기 수원병) 후보 등 40명(73%)이 당선됐다.
총선넷은 "지난 수년간 한미FTA, 4대강, 비정규직 차별, 반값등록금, 검찰개혁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을 정치적 쟁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19대 총선의 핵심 쟁점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자평했다.
이밖에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가 선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나쁜 친구' 10명 중 새누리당 김태기(서울 성동갑) 만이 당선에 실패했고 새누리당 이만우(비례대표), 정몽준(서울 동작을), 나성린(부산 진구갑) 후보 등 9명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노총이 지목한 '반노동 후보' 11명 중에서는 무소속 박영준(대구 중구남구), 새누리당 손숙미(경기 부천 원미구을) 후보 등 6명(55%)이 낙선했고 새누리당 서상기(대구 북구을), 한선교(경기 용인병) 후보 등 5명(45%)이 낙선했다.
◇보수단체, '야권 후보 심판'으로 맞불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도 상당수가 낙선 운동에 참여했다. 낙선 대상자 명단에는 주로 야권 연대 후보들이 이름을 올렸다.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 K 등 보수 성향 단체는 129명의 '반(反) 대한민국 심판명단'을 발표했다. 민주통합당 출신 54명, 통합진보당 출신 75명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들은 이가운데 '핵심 심판 인물'로 35명을 꼽았고 이중 민주통합당 이해찬(세종시), 박지원(전남 목포), 통합진보당 노회찬(서울 노원병) 후보 등 25명(71%)이 당선되고 민주통합당 정동영(서울 강남을), 김용민(서울 노원갑) 후보 등 10명(29%)이 낙선했다.
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 K 대표는 "과반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유권자들과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기독교사회책임과 선민네트워크 등 10여개 교계와 기독교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독교유권자연맹은 10명의 '기독교 유권자들이 낙선시켜야 할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민주통합당 우윤근(전남 광양), 안민석(경기 오산), 새누리당 한선교 후보 등 6명(60%)이 당선되고 민주통합당 문학진(경기 하남시), 김용민 후보 등 4명(40%)이 탈락했다.
300여개 보수 단체들이 연합한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보수 성향 후보를 대상으로 당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범사련이 선정한 15명의 '좋은 후보' 중 새누리당 이이재(강원 동해삼척), 김종훈, 하태경 후보 등 3명 (20%)만이 당선됐고, 새누리당 신진(세종시), 최홍재(서울 은평갑), 이정현(광주 서을), 국민생각 박세일(서울 서초갑) 후보 등 12명(80%)이 낙선했다.
◇정책 기준으로 '심판대상' 선정…영향력은 감소
이번 총선에서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이 허용됨에 따라 시민단체의 당선·낙선운동은 어느때보다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당선·낙선 운동이 유권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지나치게 많은 '살생부'가 난립하면서 집중도가 떨어졌고 어떤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를 기준으로 대상을 선정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한미 FTA 협상을 이끌었던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 처럼 진보 단체의 '심판 후보' 명단과 보수 단체의 '좋은 후보' 명단에 모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진보단체들은 보수 정당 후보를, 보수단체들은 진보 정당 후보를 집중적으로 명단에 올렸다. 후보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 단체의 정치적 성향에 지나치게 치중한 결과다.
시사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시민단체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 효과가 떨어진다면 다시 한번 낙선운동의 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 박사는 "도덕성이나 '철새 정치' 등의 기준으로 접근하면 보수, 진보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낙선운동에 대해 평가해 보고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