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88서울올림픽의 남한 개최를 저지하고 남북 공동 개최를 시도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방해공작을 펼친 사실이 1988년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주불(프랑스) 한국대사는 지난 1984년 9월 19일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본인이 주불 소련대사와 한·소 회담을 가졌다며 구소련이 북한에서 서울 올림픽의 일부 경기가 열리도록 설득했다고 보고했다.
주불 소련 대사는 이 문제가 조용히 외부에 알려짐 없이 한소 양국 대사간 비밀 접촉을 통해 진행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주불 한국대사는 북한에게 올림픽 경기 종목 일부 개최를 허용하자는 것은 소련이 서울 올림픽 참가의 명분과 구실을 찾는 동시에 북한에게 생색을 내고자하는 소련 측의 의도라고 평가했다.
또 소련 대사의 발언과 태도를 볼 때 북한이 이를 환영하고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당시 우리 정부도 88올림픽이 한·소 관계 개선의 결정적 기회로 보고 소련과의 다각적 접촉을 확대하고 비정치적 분야에서 상호교류 등 실질관계를 심화시킴으로서 올림픽 대회에 소련의 유력인사들이 자연스럽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설정할 방침이었다.
이에 정부는 1984년 9월 22일 오전 외무부에서 차관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소련 측의 제안을 논의했지만, 88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목적으로 한 책략이라며 거절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다.
또 주홍콩 총영사가 1987년 4월10일 외교부 본부에 보낸 문건을 보면 1986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에게 88서울올림픽에 소련이 불참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완곡한 어조로 김 주석의 요청을 거부하고 88올림픽 경기에 참가 용의를 보이면서 한반도에서 긴장 조성보다는 완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문건에는 소련이 김일성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비공식적으로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동독 등 동구권 국가들과 참가를 기정사실화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소련의 88서울올림픽 참가 결정 발표가 북한에 줄 쇼크를 줄이려는 의도로 분석된다고 총영사는 평가했다.
또 당시 북한 노동당은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명의로 1985년 6월 각국 공산당 중앙위에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지지 요청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서한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경기를 똑같이 나눠 개최하고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며 남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LA올림픽 때와 같이 집단적으로 강력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북한은 1985년 7월 30일 정무원 부총리 정준기 명의로 담화를 발표하고 올림픽 경기대회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인 8월 1일 정부는 이영호 체육부 장관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4년 전에 이미 결정한 사실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오만 불손한 태도이며 현대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무식한 집단임을 보여준 것”이라며 “남북 공동주최는 IOC 헌장의 정면 도전이자 시간적 기술적으로도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등의 내용이 포함된 1602권(약 25만여쪽)의 1988년 외교문서를 해제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6차에 걸쳐 총 2만6600여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