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 지자체 서울시가 중소 지자체장들의 연이은 '도발'에 난감해하고 있다.
지난 5월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안을 둘러싼 인천시와의 해묵은 갈등이 터져 나온 데다 최근 들어 진주시가 등축제의 원조임을 자처하며 도를 넘은 비방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을 반대하는 송영길 인천시장을 달래느라 진땀을 뺀지 얼마 되지 않아 이창희 진주시장이 상경해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등축제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는 일련의 사태가 서울시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하나이지만 부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강남구'가 구룡마을 개발 방식과 무상보육 추경예산 편성 문제 등에 있어 삐딱선을 타는 것도 서울시로서는 부담이다.
◇'져도 본전?'…일단 돌직구부터 날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문제는 송 시장의 내년 지방선거 성패를 좌우할만한 중요한 문제다.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자신들이 처리하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리 없는 인천시민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을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송 시장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관련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그는 '수도권 매립지 문제는 2016년 종료 원칙'을 전제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같은 당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송 시장의 관계가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비록 노량진 상수도관 공사장 매몰 사고로 무산되긴 했지만 이달 초 박 시장과 송 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주말 동반 산행 일정을 잡기도 했었다. 당시 송 시장이 산행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차기 대선에서 야권의 잠재적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박 시장이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송 시장은 486세대 대표주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경쟁'을 통한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는 점에서 송 시장의 행보를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창희 진주시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역구의 대표 문화 축제인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서울시가 모방했다며 지난해 말부터 '서울등축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1000만 도시 서울시가 이용해 인구 30여만 명에 불과한 진주시의 대표 축제를 모방한 것도 모자라 지방문화를 독점하고 지역의 명품축제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게 진주시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련의 주장과 행동들이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지역의 현안 중 하나인 유등축제가 이슈화될수록 지역 민심이 하나로 결집되는 효과가 생기고 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이 시장으로서는 야권의 거물급 지자체장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돋보일수록 이득이다.
만에 하나 진주시민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해 서울등축제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박원순의 서울시'인 만큼 충격이 적을 거라는 계산도 해봄직하다.
지자체장이 타 자치단체의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튀는' 행보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역 시민들에게 각인효과는 충분히 남겼을 것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구룡마을 개발방식과 무상보육 지자체 재정 분담률 두 가지를 쟁점으로 박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도 앞선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노이즈 마케팅을 경계하라!
연이은 타 자치단체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그동안 차분하게 대응해왔다. 정치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사안별로 갈등을 풀어가려는 모양새다. 상대방의 노이즈 마케팅 전략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정면으로 맞서봤자 얻을 게 없다는 현실적 계산도 엿보인다.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갈등과 관련해 서울시도 처음에는 홍보전으로 맞대응을 펼쳤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자제하는 모습이다.
대신 수도권매립지 관련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인천 시민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여론 달래기에 주력하고 있다. 여기에다 수도권매립지 수송도로 환경개선 자금으로 1025억 원의 기금을 투자할 예정이다.
사용기한 연장과 관련해 세부적인 사안은 환경부의 중재 아래 인천시와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등축제 논란과 관련해 서울시는 '상생'을 목표로 최근까지 진주시와 물밑 협상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등축제가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모방'했다는 주장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으면서도 실무적인 차원에서 합의점을 찾아보겠다는 게 서울시의 노선이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서울등축제 구간 일부를 진주남강유등축제 홍보구간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러한 제안을 진주시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구룡마을 개발 방식과 무상보육 추경예산 편성 문제 등을 놓고 서울시와 대립각을 세우려 드는 강남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인 대응보다는 실무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신 구청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마련해 법적 대응을 운운하며 서울시와 박 시장을 겨냥했음에도 서울시는 끝까지 실무 책임자를 내세워 시의 입장을 밝혀왔다.
◇참을 만큼 참았다?
한계에 도달한 모양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진주시와의 갈등에 서울시도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등축제가 아닌 박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에 대한 비방전이 시작되자 '포용'을 바탕으로 했던 기존의 입장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31일 '등축제가 임진왜란 진주성 전 투시 안부를 전하는 유등에서 유래된 진주시의 독창적인 축제인 만큼 다른 지역에서 등축제를 하면 안 된다'는 진주시의 주장이 근거 없는 억측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히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양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진 보편적인 축제라며 진주시의 주장을 일축했다.
서울시가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등 11개에 관해서도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애초 진주시와의 상생을 목표로 달래기에 나서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시는 진주시의 주장이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서울시의 명예와 자존심을 손상시켰다는 입장이다. 특히 박 시장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까지 세웠다.
한문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진주시는 더 이상의 왜곡과 비방을 중단하고 대화를 통해 양 축제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면서도 "지속적으로 억지를 부린다면 서울시의 명예와 자존심, 공무원의 명예를 위해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들이 연이어 던진 돌직구. 거대 지자체 서울은 당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잔 펀치에 멍이 들어가는 형국이다. 따지고 보면 박 시장도 여타 지자체장처럼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의 태도변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