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가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정쟁(政爭)의 장으로 바뀌었다.
지난 24일과 25일 법무부·경찰청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특위 활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여야 의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목에 핏대를 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로에게 고성과 반말, 삿대질을 해 대더니, 급기야 격분한 일부 의원 사이의 고소전으로 까지 번지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는 여야가 이른바 '저격수'들을 전면에 배치해 '강대강 대결'이 일찌감치 예고됐지만, 그 수위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국정원 국정조사 첫번째 법무부 기관보고가 있었던 지난 24일 회의가 열리자마자 여야 간 고성이 오갔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현 주중대사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녹취록을 추가 폭로한 게 발단이 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 국정조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맞서면서 여야 간 감정싸움이 격화됐다.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경찰청 기관보고를 위한 25일 국정원 국조 특위 전체회의는 시작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파행을 겪었다.
첫 질의자로 나선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경찰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증거를 은폐하려 한 증거라며 경찰청 폐쇄회로(CC)TV에 찍힌 내부 회의 영상을 공개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청래 의원이 정해진 발언시간을 넘겨 동영상을 트는 편법을 쓰는데도 민주당 소속인 신기남 특위위원장이 제지하지 않는다"며 '편파 진행'을 이유로 집단 퇴장했다.
가까스로 20분 만에 회의가 재개됐지만 여야는 회의 내내 고성과 막말을 주고받았다.
특히 여야의 감정싸움은 오후 8시 속개된 저녁회의에서 극에 달했다. 반말에 삿대질이 난무하고, 급기야 낯 뜨거운 욕설까지 등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성한 경찰청장과 최현락 수사국장을 상대로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한 축소·은혜 의혹을 추궁하면서 다소 언성을 높이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를 문제 삼고 나서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취조를 하는 것 같다. 수사도 이렇게 윽박지르는 수사는 없다"고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자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국민 중에 '윽박지르는 수사가 없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박하면서 "지금 경찰청 수사국장은 기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박영선 의원을 겨냥해 "그러니 막말 당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럴거면 혼자 수사하고 혼자 재판하고, 다 하시라"고 받아쳤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여야 간 고성과 반말이 오가면서 결국 회의가 중지되기에 이르렀다.
10여분쯤 후 속개된 회의에서 김진태 의원이 질의를 시작하자 다시 민주당 의원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김진태 의원이 "사실을 자의적으로 단정해서 마음대로 재단하는 우리 위원들의 행태에 슬프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질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하자,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모욕스러워서 더 이상 못 듣겠어. 우리가 소속된 법사위 위원장(박영선 의원)이잖아요. 어떻게 인간이 그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사람 취급을 하지 마"라고 거들었다.
이 과정에서 약 5분간 여야 의원들의 고성이 뒤죽박죽 엉키면서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신기남 위원장은 "자제해 달라", "품위를 지켜달라"며 양측을 자제시키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회의가 중단됐을 때) 옆방 휴게실에 와서 '씨×'이라고 하고 갔다"고 폭로했다. 박범계 의원은 "'김진태 의원 발언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 에이씨'라고 했지, 절대 '씨×'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날 김진태 의원과 박영선 의원 간 공방은 감정싸움을 넘어 고소전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은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어제 회의 중 박영선 의원이 저를 지칭하며 '야 너 인간이야', '사람으로 취급 안해' 라는 막말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박 의원이 막말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형사고소와 국회 징계안제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반면 박영선 의원은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김진태 의원이 국정원 기관조사가 예정돼 있는 날 기자회견을 한 것도 정략적이고 막말을 조작해서까지 브리핑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도 "새누리당 국정조사 위원들은 법무부, 경찰청 기관보고 내내 박영선 의원을 번갈아 가며 자극했다"며 "새누리당의 해묵은 레퍼토리인 막말 논란 키우기는 이젠 너무 지겹다"고 비판했다.
지난 26일에도 여야는 국가정보원 기관보고의 공개·비공개 여부를 두고 대치하면서 사실상 파행을 빚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회의에 불참한 새누리당 위원들과 불출석한 남재준 국정원장을 성토하고 나선 반면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단독 회의 진행을 비판하면서, 양측은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활동이 불투명한 상황.
지난 3일(24~26일)동안 드러난 특위의 모습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진실규명이라는 본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특히 진실규명과 책임 추궁을 통해 권력기관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제도적 개혁을 이룰 것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행과 공전을 거듭할수록 여야 모두 여론의 역풍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