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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농지 해제' 논란…쌀 과잉생산 해소 VS 식량주권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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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농지 해제' 논란…쌀 과잉생산 해소 VS 식량주권 위협
  • 송경진 기자
  • 승인 2016.09.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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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단체 "식량주권 포기하고 부동산 투기 조장"

 농사 이외의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농업진흥구역, 즉 절대농지를 대폭 해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구조적인 쌀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라지만 식량주권을 위협하고 부동산 투기 과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5일 정부와 새누리당에 따르면 지난 22일 열린 '2016년 수확기 쌀 수급안정 관련 당정 간담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는 공공비축, 민간 벼 매입지원, 수입쌀 관리, 농가소득 보전, 소비촉진 등에 대한 계획을 당에 보고했다. 그러나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절대농지'로 묶여있는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자는 논의가 대두됐다는 점이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1일 당정협의에서도 "현재 농지를 가지고 쌀을 계속 생산하는 것은 농민들에게도 유리하지 않은 만큼 농업진흥지역을 희망받아 그린벨트를 해제하듯이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주무부처도 떨떠름한 절대농지 해제 
 
쌀은 매년 과잉생산되는데 소비가 급감하면서 남아도는 쌀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농사짓는 땅을 줄여 생산을 조절하고 쌀값 하락을 막자는 게 여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에서는 농업진흥지역 해제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전국 농지 가운데 농업진흥지역은 돈을 들여서 보조를 해온 것"이라며 "굳이 귀한 농업진흥구역 농지를 앞장서서 해제하는 것은 통일도 대비해야 하고 한번 해제하면 돌릴 수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보였다. 
 
한 농식품부 관계자도 "당정협의에서 농업진흥지역 해제가 이슈가 됐지만 쌀 수확기 수급안정 중심으로 보고를 했을 뿐 농지관련 부분은 보고자료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한다고 해도 쌀값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참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쌀은 남아돌아도 식량자급률은 평균에 못 미쳐 
 
한 번 다른 용도로 전환된 땅은 오염이 돼 농지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농민단체와 환경단체들은 농업진흥지역 해제에 반기를 들고 있다. 
 
쌀 생산이 많아서 문제가 된다면 농업진흥지역은 그대로 두고 타작물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줘야지, 땅을 용도변경해 공장이나 발전소를 짓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물론 타작물 전환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우리 농촌은 고령화가 심각한 만큼 노인들이 비교적 기계화가 많이 진행된 쌀 농사 위주로 영농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내놓은 '2015 농림어업 총조사 잠정 집계 결과'에 따르면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5.6세로 2010년에 비해 3.3세나 많아졌다. 
 
익숙한 쌀 농사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작물을 생산하게 하려면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예산당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쌀은 창고에 남아돌 정도로 많지만 보리나 밀, 콩 등의 곡물자급률은 저조해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실에 따르면 '식량자급률 목표치 설정 계획 및 목표 달성률'을 조사한 결과 농식품부가 수립한 2015년 식량자급률(잠정)은 목표치(57%)보다 6.8% 낮은 50.2%로 나타났다. 
 
쌀은 101%로 목표치(98%)를 웃돌았지만 밀 1.2%(목표 10%), 콩 32.1%(목표 36.3%), 보리쌀 22.3%(목표 31%) 등 기타 잡곡은 자급률이 저조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까지 식량자급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175만2000㏊가 필요하지만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역대 최저인 167만9000㏊에 그쳤다. 
 
안 그래도 농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농업진흥구역으로까지 지정된 지역을 해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이냐는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그동안 농업진흥지역 해제가 간헐적으로 이뤄져 와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던 만큼 정부는 앞으로 매년 실태조사를 해 절대농지를 풀어줄 방침이다. 정부는 올 들어 8만5000㏊의 농업진흥구역을 해제하고 연말까지 1만5000㏊를 추가 해제할 계획이다. 
 
◇부동산 투기 과열돼 땅 가진 지주 배불리는 격 
 
농민단체들은 당정이 쌀값 폭락 대책이 아닌 부동산 투기 조장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이미 일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절대농지 해제로 인해 농지 시장이 출렁일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쌀값 하락에 대한 실질 대책은 전혀 없는 가운데 느닷없이 농업진흥지역 해제라는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식량자급률(20%대)을 유지한 한국이 식량생산을 줄이기 위해 농업진흥지역을 줄이겠다는 사고는 세계적 웃음거리"라고 비판했다. 
 
전농은 "농업진흥지역을 해제하면 땅값이 오르고 그러면 농민들이 땅을 팔고, 그 땅 위에 건물을 지으면 쌀 생산이 줄어 쌀값이 오른다는 생각은 발상 자체가 천박할 뿐 아니라 농업 생산에 대한 중요성과 철학이 전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꼴"이라고 밝혔다. 
 
모든 농민들이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지를 가진 농민들은 저평가된 지가가 높아지면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농지가 해제되면 땅 주인들에게는 호재가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소작 농민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란 게 전농의 판단이다. 
 
전농 관계자는 "전농이 공식적으로 농업진흥지역의 해제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더니 왜 반대를 하느냐고 문의를 해 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면서도 "농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꼭 농민이라고 볼 수는 없다.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농지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번 농업진흥지역 해제 논의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절대농지를 유지시키느냐, 아파트·공장·발전소 등을 지을 수 있게 해 산업을 개발시킬 것이냐의 대립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 내에서는 보통 농식품부가 전자를, 기재부가 후자를 대변한다. 
 
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기재부에서는 농지를 줄여 다른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선호해 왔다"며 "농지면적이 감소될 필요가 있다면 비농업진흥지역의 용도를 바꾸면 될 일이고 농업진흥구역은 식량주권을 위해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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