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 ‘코스피(KOSPI)’가 급등세로 치솟으면서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 악재에 대한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지난 1월 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47.89포인트(3.43%) 상승한 4,457.52로 장을 마쳤다. 직전 거래일인 지난 1월 2일에도 2% 넘게 급등해 4,3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4,400선까지 넘어선 것이다. 연말연시 약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증시와 상반된 강세장이다. 증시를 뜨겁게 달구고 견인하며 지수를 끌어올린 것은 역시 반도체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13만 원대를 기록했으며, SK하이닉스도 장중 70만 원대까지 오르며,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이 4,000조 원을 넘어선 가운데 시총 1, 2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두 기업의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1,734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수출·영업이익 모두 역대급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은 올해 반도체 수출이 작년보다 10% 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수출 기업의 경기 전망 반등에도 불구하고, 고환율과 고비용 여파로 새해 초 기업 체감경기가 기준치를 하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28일 전국 2,208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2026년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직전 분기 전망치인 74보다 3포인트 상승한 77로 집계됐다. 2021년 3분기 이후 18개 분기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관세 충격으로 급락했던 수출기업의 전망 지수는 90으로 16포인트 상승했지만, 내수기업의 전망 지수는 74에 그치며 전체 체감경기 상승의 발목을 잡았다. 기업 규모 별로 보면, 중소기업의 전망지수가 75로 대기업(88)과 중견기업(88)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대기업들의 경우 수출 비중이 높아 관세 불확실성 해소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데 반해,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조달 비용 부담이 가중되면서 체감경기가 정체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5일 코스피 지수 급등세에도 상승 종목 437개보다 하락 종목은 449개로 12개 종목이나 많았다. 반도체 활황은 그 무엇보다 반갑지만, 동시에 반도체 착시에 빠져들지 않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지난해 폐업한 소상공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며 ‘자영업자 100만 폐업 시대’에 진입한 가운데 정부가 소상공인 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구직 활동조차도 하지 않는 ‘쉬었음’에 해당하는 인구가 254만 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12만 명이나 더 늘었다. 이 가운데 20대와 30대가 71만 명으로 역대 최대다. 2025년 7월 이후 다섯 달 연속 70만 명대다. 특히 주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떨어질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이날 외국인이 2조 원 넘는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환율은 베네수엘라 사태로 강달러가 돼 되레 2.0원 오른 1,443.8원을 기록했다. 고환율은 고물가로 이어져 민생을 악화하고, 내수 중심 제조업체에 원가 부담 확대와 수익성 저하라는 이중·삼중의 고통만을 안기고 있다.
경기의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는 주가가 연초부터 강한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경제 주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주가 상승 뒤 가려진 우리 경제의 우려스러운 지점에 대해서도 각별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주가나 수출 실적 등에서 볼 수 있듯 반도체와 다른 산업 간 차이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월 2일 밝힌 신년사에서 “올해 성장률이 1.8%로 전망되지만, 아이티(IT) 부문을 제외하면 1.4%에 그치고 부문 간 회복 격차가 클 것”이라며 “이러한 ‘케이(K)자 형 회복(양극화를 동반한 회복)’은 결코 지속 가능하고 완전한 회복으로 보기 어려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슈퍼사이클(Super-cycle │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현상)’에 올라탄 반도체가 다른 산업 부문의 부진을 가리는 ‘반도체 착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수출과 내수 간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의 관세 전쟁에도 수출이 지난해 7,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견조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민간 소비나 설비투자 등 내수는 냉랭한 상황이다. 수출 호황이 국내 고용 등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옅어진 탓이다.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좌우하는 좋은 일자리 창출이나 실질임금 증가는 부진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균형이 켜켜이 쌓이면서 결과적으로 계층 간 소득·자산 불평등 확대로 귀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코스피 5,000 시대는 물론 인공지능(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이라는 이른바‘335 공약(公約)’ 등의 목표를 내세우며 전체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지지 않는다면, 성장률 등은 공허한 숫자에 그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모두의 성장’ ‘지방 주도 성장’ ‘지속 가능한 성장’ 등으로 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런 다짐이 조만간 발표될 ‘2026년 경제 성장전략’ 등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구현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주가 상승으로 한국경제 전반에 활력이 넘치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불씨를 잘 살려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만 한다. 일각에서는 올해 1분기 내 ‘코스피 5,000 시대’가 달성될 거라는 당찬 기대감도 일고 있지만, 기업 실적 개선과 내수 회복 없는 ‘코스피 5,000’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나 다를 수 없다. 초고령사회 일자리 해법과 국가 주도의 양극화(兩極化 │ Polarization) 해소도 주도면밀(周到綿密)하게 추진해야만 한다. 반도체 산업은 ‘AI 빅테크((Big Tech │ 거대 기술기업)’와 ‘클라우드(Cloud) 업체’ 동향 등에 따라 부침(浮沈)을 겪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에 버금가는 신산업을 육성하고, 수출과 지방으로 경제영토를 넓혀 나가며, 철강·석유화학 같은 전통 제조업은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신속히 전환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