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고물가가 장기화하면서 쓸 돈이 줄어든 중산층이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자녀 학원비까지 졸라매고 있어 좀처럼 꺾이지 않았던 자녀 사교육비마저도 긴축 대상에 오르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12월 21일 국가데이터처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미혼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의 월평균 학생 학원 교육비 지출은 41만 3,000원으로, 1년 전보다 0.7% 감소했다. 자녀가 있는 가구의 학원 교육비가 전년 동기대비 감소한 것은 2020년 4분기 이후 5년 만이다.
학원 교육비는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가늠하는 지표다. 초·중·고교생 학원비는 물론 영유아, 재수생 등을 위한 보충·선행 학습 비용을 포함한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교육비는 ‘자녀의 미래를 위한 최후의 보루’란 점에서 여간해선 줄이지 않는 게 상례이자 가계의 ‘마지막 긴축’ 수단이 돼왔다. 이런 이유로 통상 사교육비는 소득이나 소비 여건과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왔는데 최근 소비가 위축되면서 학원비 지출까지 줄이는 부모가 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교육비 지출은 2020년 1분기부터 4분기까지 감소하다가 코로나19 이후 18분기 연속 증가했다. 이 추세가 5년 만에 감소로 돌아선 건 그만큼 가계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신호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경제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 세밑 대목도 사라졌다. 정부가 물가를 잡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하는 이유다.
올해 3분기 미혼 자녀가 있는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68%로 1년 전보다 2.3%포인트 하락했다. 평균소비성향은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 지출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이 비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계가 지갑을 닫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분가능소득은 소득에서 세금과 이자 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금액을 일컫는다. 미혼 자녀가 있는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666만 1,000원으로 5.3% 증가했지만, 소비 지출은 453만 2,000원으로 1.9% 증가에 그쳤다. 또한 전체 가구의 명목 소비 지출은 1.3% 증가했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한 실질 소비 지출이 0.7%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미혼 자녀 가구의 실질 소비 여력도 다소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교육비 감소 폭은 중·저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올해 3분기 월평균 소득 300만~400만 원 수준인 가구는 학원비 지출 감소율은 21.3%에 달했고, 400만~500만 원인 가구의 학원비 지출 감소 폭도 27%에 달했으며, 월평균 소득이 500만~600만 원인 가구의 학원비 지출은 1년 새 33%나 줄었다. 그러나 월평균 소득 700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구의 학생 학원 교육비 감소율은 2.9%에 그쳤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2월 2일 발표한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7.20(2020=100)으로 전월 대비 0.2% 하락했고, 전년 동월 대비 2.4% 상승했다.
특히 고환율은 수입 물가와 생산자 물가를 자극하며, 소비자물가에도 점진적인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11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2.6% 오르며 1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도 0.3% 상승하며 3개월째 오름세를 이어갔다. 지난달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9%나 됐다. 고물가의 가장 큰 피해는 서민과 저소득층에게 돌아가고 있다. 3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는 소비 지출의 40%를 먹거리와 주거 등 생계형 항목에 썼다. 소득 상위 20% 가구보다 2배 높은 비중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내수 침체로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2월 22일 전국 소매유통업체 300개 사를 대상으로 ‘2026년 유통산업 전망 조사’에서 내년도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업계는 성장 둔화의 원인으로 ▷소비심리 위축(67.9%), ▷고물가(46.5%), ▷시장경쟁 심화(34.0%), ▷가계부채 부담(25.8%) 등을 꼽았다.
최근 물가가 오른 이유는 원가 상승과 통화량 증가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가격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지난 6월 1,360원대였던 월평균 환율은 1,500원 선도 위협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원화 표시 자산의 가치도 녹아내려 결국 전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된다. 돈 풀기보다는 경제의 기초 체력을 기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근본 대책에 집중, 환율과 물가 안정에 매진하는 게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의 대규모 국내 증시 매수와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대책에 힘입어 지난 12월 26일 장중 1,430원대로 하락했다. 환율이 장중 1,430원대까지 내려온 것은 지난 11월 4일 이후 약 한 달 반만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 45분 기준 1,443.1원에 거래되고 있다.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종가보다 0.1원 오른 1,449.9원에 출발했으나 장 초반 1,454.3원까지 상승한 뒤 하락추세로 전환됐다. 외환 당국은 지난 2월 24일 고강도 구두 개입 메시지를 내놓는 한편, 해외 주식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서학개미)의 국내 증시 복귀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 등 환율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주 초반 1,480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1,440원대로 급락한 바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과 환율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 가계 부담을 낮추고, 가성비 지출에 몰리는 소비 경향을 고려한 대대적 세일 정책 등을 병행해야만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살아나야만 한다. 투자와 고용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것이 내수 회복의 관건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국내 기름값은 원/달러 환율 상승과 유류세 인상 등이 겹쳐 지속적으로 올랐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물가를 자극해 기름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국내 기름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유가가 최근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보이면서 휘발유·경유 가격이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연말 기름값 상승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원·달러 환율이 최대 복병이다.
최근 외환 당국의 거듭된 구두 개입과 ‘국내 투자·외환 안정 세제지원 방안’ 등으로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다소 진정된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들 방안이 대부분 임시방편 미봉책이자 대증요법 성격을 갖고 있어 환율이 다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국내 투자·외환 안정 세제지원 방안에는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미국 등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에게 비과세 혜택을 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환율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한국 내 달러 부족’ 등 근원적인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환율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최근 안정세를 보이는 국제유가도 연말·연초 국제정세 등에 따라 언제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음을 각별유념하고 선제 대응에 나서야만 한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지갑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고물가다. 고환율이 장기화하면서 수입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치솟아 장보기가 겁날 정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환율의 물가 전이 효과로 5년 전과 비교해 커피는 달러 기준 3배, 원화 기준 거의 4배까지 올랐고, 소고기는 달러 기준 30% 오른 동안 원화 기준 60% 이상 상승했다. 돼지고기, 닭고기, 치즈, 과일 등 다른 수입품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서 가계 이자 부담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소득이 늘어도 이자와 생활비 부담이 커 실제 소비 여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점은 소비심리다. 미래가 불안하다고 느낄수록 가계는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비상금처럼 현금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덩책은 타이밍이지만 경제는 심리다. 이런 신호는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게 문제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기업들은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환경 속에서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국민의 경기 기대감도 낮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칭답게 안정적 물가 관리가 본질적 목표인 한국은행에 ‘환율 플레이션(고환율+인플레이션)’은 최대의 적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외식 물가 평균 상승률은 3.1%로,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평균 상승률 2.1%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달러당 1,400원대 고환율로 수입 식재료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환율 상승과 인플레이션 결합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외식, 필수재와 건축자재 가격이 오르며 재건축 등 주택공급도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과거와 달리 고환율이 수출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으로 오히려 수출기업 채산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고환율 엔저의 이중 압박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 이익 감소와 투자 부진,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제 침체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각별 명심하고 물가를 잡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