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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 3500억불 비준 안한다…수익·리스크 배분 후속 협상력 약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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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 3500억불 비준 안한다…수익·리스크 배분 후속 협상력 약화 우려
  • 박두식 기자
  • 승인 2025.11.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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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민주당 “비준 동의안 제출 검토하지 않아”
원리금·이익배분 방식 등 조정여지 남아있단 판단
“법적구속력 있는 비준, 조정권 미국에 넘기는 셈”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 의결에 대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 의결에 대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와 여당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야당의 요구에도 비준 동의안 제출을 검토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적 합의인 양해각서(MOU)에 비준을 부여할 경우 한국만 국제법적 의무를 지게 돼, 원리금·수익 배분 조정이나 환율 변동 시 투자 규모 조정 등 후속 조정 과정에서 한국의 협상력이 제약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도 “아직 수익 배분 등 조정이 필요한 내용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비준을 서두르면 향후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일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와 여당은 현재 비준 동의안 제출을 검토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부 의견이 정리된 상태다.

MOU의 성격상 비준이 성립할 수 없으며, 비준을 강행할 경우 한국만 법적 구속을 받게 돼 향후 한·미 간 투자 조정·보조금 협의 등 후속 협상에서 운신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 당정의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대미 투자 MOU는 애초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기로 양측이 합의한 행정적 합의”라며 “조약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만큼 헌법상 비준 대상도 아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도 “이번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적 합의인 만큼 비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정부와 인식을 같이한다”며 “핵심은 비준 여부가 아니라 투자 공사 설치·기금 조성 등 이행 체계를 국회가 법으로 정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에선 헌법 60조를 근거로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헌법 60조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가 사실상 국가 재정 부담에 직결되는 만큼 국회가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이다. 또한 비준을 통해 사업 구조·위험 분담·자금 집행 방식 등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YTN ‘김영수의 더 인터뷰’ 라디오에 출연해 “헌법 60조에 따라 국가에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은 다 국회 비준 동의를 받게 돼 있다. (대미 투자) 3500억불이면 500조(원)에 달하는 돈인데, 국회 동의를 안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비준을 하게 될 경우 오히려 한국만 법적 구속을 받게 돼 후속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한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어 처리 자체는 어렵지 않더라도, 비준이 성립하는 순간 한국 측 의무만 명확해지고 향후 투자 조정·보조금 협의 등에서 미국과 대등한 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판단이다.

실제 MOU 체결로 투자 규모와 기본 골격은 마련됐지만, 아직 원리금·이익 배분 방식, 외환시장 불안 시 투자 규모 조정 절차 등 일부 핵심 조항은 여전히 후속 협의와 조정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한미가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는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연 최대 2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마스가 프로젝트) 1500억 달러’로 구성됐다.

특히 수익은 한미가 5대 5로 배분하되, 일정 기간 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경우에는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문구가 포함됐다.

다만 어떤 상황을 ‘상환이 어려운 경우’로 보고 배분 비율을 조정할지, 외환시장 불안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조정 요구를 미국이 어느 수준까지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지 여전히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익 배분 조정의 전제가 되는 기준조차 비어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재정 부담과 환위험을 어떻게 관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태에서 비준으로 법적 구속력까지 먼저 만들어버리면 향후 조정권을 미국에 사실상 넘기는 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프로젝트 선정 또한 불확정성이 존재한다. 미국 상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투자위원회와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끄는 협의위원회가 구성되지만, 한국이 실질적 거부권을 갖는지, 수익성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등은 아직 불확정적이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투자 규모는 정해졌지만 자본 구조와 리스크 분담 비율, 미국 공공기관·기업의 참여 범위 등 핵심 설계는 여전히 확정적이지 않다”며 “이런 상태에서 비준이 이뤄지면 손실 분담 원칙이나 리스크 배분 등 중요한 요소를 한국이 다시 논의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비준동의를 받으면 우리만 구속하는 게 될 수 있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중간 중간 외환시장(상황에 따른 투자액) 조정이나 원리금, 이익 배분을 조정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전날 SBS 8 뉴스에 출연해 한국의 대미 투자에 따른 수익금을 한미가 5대 5로 나누도록 한 조항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는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며 “일정 조건하에서는 조정할 수 있는 문구도 받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도 우리나라가 수익 배분 조정 등 추가적인 요구를 시도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협상의 유연성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애초 국가 간 MOU이기 때문에 조약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 단계에서 법적 구속을 부여하면 후속 협의에서 한국이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줄이게 된다”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법적 구속을 만들어버리면 미국과의 조정·협상 공간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정은 국회 비준 논쟁에 매달리기보다, 실질적 이행 체계를 먼저 정비해 후속 협상에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당정은 연내 대미투자협력특별법을 제정해 관련 예산 확보에 총력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야당에서 제기하는 우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그런 우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최종적으로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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