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11-18 17:00 (화)
한계기업 제때 정리 못 해 성장률 낮아졌다는 한은의 지적, 퇴출 서둘러야
상태바
한계기업 제때 정리 못 해 성장률 낮아졌다는 한은의 지적, 퇴출 서둘러야
  • 류효나 기자
  • 승인 2025.11.16 0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돈을 못 벌고 빚으로 버티는 ‘좀비기업’을 제때 솎아냈거나 이자도 갚지 못해 부도 위험이 큰 ‘한계기업’을 제때 퇴출을 시켰다면 연간 국내총생산(GDP)이 0.4∼0.5% 더 증가했을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우리 경제가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한계기업’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 경제의 성장 추세가 구조적으로 둔화했다.”라는 지적이자 경제위기 때면 반복적으로 금융과 재정 지원을 통해 ‘좀비기업’을 양산해 온 정부 정책에 일침(一鍼)을 가한 것으로 결코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지난해 명목 GDP를 적용해 환산하면 ‘한계기업’을 살리느라 10조 원 이상의 성장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국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발 위기 등 주요 경제위기를 맞을 때마다 경영이 어려운 기업들이 정부의 금융 지원으로 연명하며 버틴 영향이다. 이러한 경제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좀비기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한국 경제가 구조적인 성장 둔화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 ‘한계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이 되는 ‘정화 메커니즘(Cleansing effect)’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진단이다. 인공지능(AI)을 혁신성장의 중심에 놓고 있고,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면서도 기업 구조조정에는 소홀함이 엿보이던 이재명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지난 11월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제2025-33호)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는가? : 기업 투자경로를 중심으로(이종웅·부유신·백창인)’ 제하의 연구보고서 내용에 의하면 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 둔화는 기업 수익성 악화에 따른 투자 부진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경제의 정화 메커니즘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서 성장 추세의 둔화가 심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성장 추세 둔화를 완화하고 나아가 반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 지원을 하더라도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퇴출을 통해 경제의 혁신성과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유동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 혁신적인 초기 기업 등에 금융 지원을 선별적·보조적으로 운용하여 지원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주력산업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규제 완화를 통해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새로운 제품·서비스 수요를 창출하여 우리 경제의 미래 동력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연구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1990년대 이후 우리 경제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성장추세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둔화되었다. 거시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는 위기로 인한 부정적 수요충격이 투자의 이력현상(Hysteresis)을 통해 성장의 추세적 둔화로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투자의 이력현상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업 단위의 미시 데이터를 추가로 활용하여 실증 분석하였다. 2,200여 개의 외감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 이후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에서 투자가 정체 또는 감소하였으며, 이러한 투자 부진은 금융 제약보다는 수익성 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200여 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잦아든 2014∼2019년 ‘퇴출 고위험’ 기업은 4%였지만 실제 퇴출된 기업은 2%로 절반에 그쳤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인 2022∼2024년에는 ‘퇴출 고위험’ 기업 비중이 3.8%였으나 실제 퇴출 기업 비중은 0.4%로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은행은 퇴출 고위험 기업이 제대로 정리되고 ‘정상기업’이 그 자리를 채웠다면 국내 투자는 2014∼2019년 3.3%, 2022∼2024년에는 2.8% 늘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GDP는 각 기간에 0.5%, 0.4%씩 늘었을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명목 GDP가 2,556조 8,574억 원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최소 10조 2,274억 원에서 최대 12조 7,843억 원이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 ‘좀비기업’ 때문에 증발한 셈이다. 이처럼 재무 건전성이나 실적으로 보면 퇴출돼야 할 기업이 살아남아 혁신기업의 진입을 막고 경제 전반의 성장 잠재력을 짓누르고 있음을 방증(傍證)한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이 빚어진 데는 정부와 금융권의 무분별한 금융 지원과 정책 자금이 부실기업으로 흘러가 구조조정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피해를 이유로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전면적으로 제공했으며 올해 9월에는 44조 원 규모의 만기 연장 대출을 재연장 조치했다. 이러한 조치는 ‘한계기업’에 ‘산소호흡기’를 계속 달아준 격으로, 이런 식으로 연명 처치만 하다 보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돌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17.1%로 2010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상장기업 중 ‘좀비기업’의 비율은 21.8%(대기업 10.8%, 중소기업 32.8%)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6배 큰 미국의 상장 종목 수가 4,600개 정도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3,000개에 육박하는 현실도 ‘좀비기업’에 관대한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해외 주요국과 달리 경기 침체기에 ‘부실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이 되고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는 시장 재편 메커니즘 이른바 ‘정화 메커니즘(Cleansing effect)’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선거 등을 의식해 기업 회생과 청산을 정치 논리로 해결한 사례도 적지 않다.

부실이 더 커지기 전에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성장을 저해하는 ‘한계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지적대로 이제는 약하고 쓰러지는 기업을 붙잡는 데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성장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정책 역량을 집주(集注)해야 한다. 또한 개별 기업 차원보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보호·육성하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아울러 신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지금 당장 목전의 고통이 두려워 구조조정의 골든타임(Golden-time)을 놓친다면 한국 경제는 영원히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각별 명심해야 한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혁신성장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지닌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진부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대체하고 그 과정에서 경제·산업 전반의 변화를 견인해 내는 현상으로 새롭고 더 나은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이 지속 성장의 관건임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상위 0.1%(약 2~3개 사)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투자 흐름을 그대로 유지한 데 반해, 나머지 대부분의 기업에선 투자가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투자 위축의 원인이 유동성 부족이나 담보 한계 등 금융 제약보다는 수익성 저하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립 아기옹(Philippe Aghion)’과 ‘피터 하윗(Peter Howitt)’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파괴’가 빠진 비정상적인 상태가 유지되며 구조적인 저성장이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은행 조사총괄팀 부유신 과장은 “개별 기업의 보호보다는 산업의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둔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낡은 세포가 빠져나가야 새로운 세포로 채울 수 있다. 자금은 초기 ‘혁신기업’과 신산업 투자, 주력산업 경쟁력 유지 등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5대 금융그룹이 약속한 생산적·포용적 금융 규모만 508조 원에 이르는 만큼 은행 건전성 관리 능력도 필수적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개혁을 가속화(加速化)해야 할 때다.

특히 ‘한계기업’의 연명(延命)은 시장의 활력을 갉아먹고 ‘혁신기업’ 진입의 문턱만 높인다. 이는 자본과 인력이 생산성 높은 곳으로 가는 통로를 막아 국가 경제를 저성장의 늪에 빠뜨리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력산업과 기업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大同小異) 큰 차이가 없는 반면 경쟁국들은 신기술을 장착한 ‘혁신기업’들이 주류를 이루며 신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현실이 극명하게 말해준다. 한국 경제가 다시 성장의 궤도로 오르기 위해서는 낡고 진부한 구각(舊殼)들을 과감히 솎아내는 과단성(果斷性)과 새로운 것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제도적 개방성(開放性)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는 ‘좀비기업’은 서둘러 퇴출을 시키고,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악화하겠지만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 정책 역량을 총력 집중해야만 한다. 정부가 속도를 내는 ‘생산적 금융’이 ‘한계기업’의 연명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부터 서둘러 막을 필요가 있다. 당장 목전의 고통을 면피하기 위해 부실기업을 계속 끌어안고 가다가는 더 큰 위기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짙은 환부(患部)를 도려내지 않고 반창고만 붙여대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해서는 결단코 아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