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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국산 HBM 대중 수출 통제, 경제 충격 최소화 총력전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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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국산 HBM 대중 수출 통제, 경제 충격 최소화 총력전 펼쳐야
  • 류효나 기자
  • 승인 2024.12.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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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각종 악재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경제에 한밤중 황당하고 어이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충격파를 던졌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어처구니없고 생뚱맞은 초유의 사태에 국가의 경제지표가 황망하게 추락하며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고 국가 신인도가 급락하며 막대한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향후 정국 불안정이 길어진다면 이 또한 한국경제에 불확실성을 심화시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s │ 한국 증시 저평가)를 가중하는 요인이 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심각한 청년 실업과 흔들리는 수출 증가, 얼어붙는 내수 부진, 수렁에 빠진 재정 부족으로 둔화하는 경기가 악순환에 빠져들어 장기 저성장 우려가 커져만 가고 있는 한국경제에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쇼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 경제의 급격한 추락을 예고하고 있다. 저성장 예고 와중에 계엄 사태까지 겹치면서 내우외환 수렁이 더 깊어졌다. 한국은 졸지에 ‘여행 위험 국가’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미·영·일이 자국민에게 한국 여행에 주의하라는 경보를 발령했다. 산업화·민주화 모범국가로 평가받았던 한국에 대한 시선이 냉소로 갑작스레 뒤바뀐 것도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AP통신은 “한국의 계엄 선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며 “19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CNN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정치적으로 미지의 바다에 빠졌다”라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번 일을 계기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가 다른 시장보다 저평가받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강화될 수 있다”라고 봤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이 불확실해졌다”라며 정정 불안(政情不安)까지 예상했다.

이를 방증(傍證)하듯 경제지표는 요동쳤다. 6시간의 계엄 소동이 끝난 지난 12월 4일 한국거래소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7.2원 오른 1410.1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무려 2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4일 새벽 상황에선 한때 1450원 가깝게 뛰는 발작 증세도 나타났다. 코스피지수 역시 외국인이 4000억원 넘게 매도하며 전 거래일 대비 36.10(1.44%) 하락한 2464.00으로 장을 마쳤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전날 밤 한때 3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 등 한국 주요 기업의 주가도 크게 출렁였다. 이날 오전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총 50조원 규모의 증권시장 안정펀드(10조원 규모) 및 채권시장 안정펀드(40조원 규모) 등 유동성을 최대한 동원하겠다는 발표 덕분에 예상보다 자본 이탈이 덜한 게 다행일 정도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가 지난 12월 2일(현지 시각)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을 통제하는 새 조치를 내놨다. 미국 정부가 중국 수출이 통제되는 반도체 품목에 한국산 HBM을 포함시킨 것이다. 여러 개의 D램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HBM은 인공지능(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이다.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특허와 기술이 사용된 경우엔 미국의 수출 통제를 따라야만 한다. 미국은 중국이 AI로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는 걸 막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신규 수출 통제도 함께 발표됐다. 중국도 다음날 갈륨 등 희토류의 미국 수출 통제 방침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2기 행정부에서 더욱 격화될 미·중 통상전쟁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미·중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 기업의 전도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뜩해질 상황이다. 현재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약 54%, 삼성전자가 41%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 업체들이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인 만큼 정부가 이번 조치를 철저히 분석해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부는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HBM은 미국 엔비디아(NVIDIA)에 공급하기에도 물량이 달리는 실정이고 삼성전자 역시 중국 판매 비중이 높지 않아 영향이 크지 않다고 밝히고 있으나 안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계 반도체의 절반을 소비하는 최대 시장인 중국의 판로가 막히는데 영향이 미미하다고 할 수 없어서다. 기업들은 이번 규제가 장기적으로 세계 HBM 시장 규모 자체를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가 상시화하면서 국내 기업은 이미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조 바이든(Joe Biden)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 Chips Act)’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527억 달러(약 71조원) 규모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철회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만약 현실화하면 미국에 공장을 짓는 조건으로 9조5000억원의 지원금을 받기로 한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무엇보다 이번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에서 일본과 네덜란드 등 총 33개국이 미국 상무부 허가 면제를 받았는데 한국만 빠진 것도 정부의 느슨한 상황 판단에 기인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자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대중 수출을 스스로 제한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산업의 쌀이자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산업이 미국의 규제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게끔 정부는 방관(傍觀)하고 방치(放置)하고 방기(放棄)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그간 한국 기업의 투자가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를 많이 했는지를 부각하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적극적으로 받아내야만 한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나라들과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만 한다. 정부 당국은 비상한 각오로 치밀한 통상전략을 세워 조널드 트럼프 폭풍 대비에 총력전을 펼쳐야만 한다. 그동안 미국의 끊임없는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倔起 │ 우뚝 일어섬)’가 끈질기게 이어진 만큼 미국의 압박은 더 거세고 촘촘해질 게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이미 관세 전쟁까지 예고된 상태다. 미국의 원천 기술로 반도체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팔아온 한국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정확한 판단과 민첩한 대응으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고 기업은 핵심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만 한다. 한순간만 방심해도 낙오자가 되는 서슬 퍼런‘칩워(Chip War)’가 이미 시작됐다. 경제에 관한 한 지금은 민(民)·관(官)·정(政)이 원팀으로 총력 대응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야만 치열한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중국 갈등의 여파로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모가 줄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미국의 기준에 따라 수출 통제 제도를 정비해 면제국 지위를 얻는 등 외교적 노력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구나 반도체 제국 인텔인텔(INTC)의 ‘펫 겔싱어(Pat Gelsinger)’ 최고경영자가 돌연 사임할 정도로 반도체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적 추가 피해와 신인도 급락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때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은 계엄 정국의 격랑 속에서도 파국의 소모적 정쟁을 접고 '반도체 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지난 11월 27일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방안’의 핵심은 재정·세제·금융·인프라를 아우르는 비용 지원이다. 내년에만 총 14조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 1조8000억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 비용도 정부가 절반 이상 책임진다. 일본은 지난 11월 22일 반도체 산업에 10조엔(약 91조원) 규모를 지원하는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했다.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과 전력 반도체 양산 투자에 6조엔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민간대출에 대한 출자·보증 등 4조엔의 금융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의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만큼, 대응책 마련에 서둘러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 신인도 제고는 물론 정국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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