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8-11 11:52 (월)
문채원, 이런데도 반성만 하나…자만해도 좋다
상태바
문채원, 이런데도 반성만 하나…자만해도 좋다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12.15 1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년여 전 문채원(26)을 만났다. 여주인공으로 나온 액션 블록버스터 ‘최종병기 활’(감독 김한민)이 750만 관객을 모은 것도 모자라,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KBS 2TV 수목극으로서는 오랜만에 시청률 1위에 오르면서 막을 내린 지난해 10월 말이었다.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각광 받은 ‘사극의 여왕’은 몹시 지쳐있었다. 자책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제 초반 연기가 튀어 보였나 봐요. 세령이를 주목 받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 톤을 튀게 잡았거든요. 어른들이 사극이란 눌러서 가는 맛이 있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부족해서 계산이 틀렸던 거죠.”

문채원은 ‘공주의 남자’ 초반의 연기력 논란을 종방 뒤에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시비도 잠시였을 뿐, 회를 거듭할수록 연기력에 대한 호평과 찬사를 한 몸에 받은 뒤였는데도 그랬다.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심한 자기 반성을 한 덕일까, 1년여만의 복귀작으로 올 가을 안방극장을 달군 같은 방송사 수목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문채원은 연기력 논란은 커녕 시종일관 “변화무쌍한 캐릭터인데 잘 소화해낸다”, “미모와 연기 모두 물 올랐다” 등 극찬을 들었다.

문채원의 연기력을 호평한 기사에 달린 댓글 100개 중 95개가 호응이었고, 그 댓글에 다시 수십개의 ‘공감’이 달렸다는 것만 봐도 시청자들이 문채원의 연기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전매특허인 사극이 아닌 현대극이라는 한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착한 남자’가 끝난 다음 만난 문채원은 마냥 만족해 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새롭게 자기 반성 중이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정답도 없고, 이제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점점 더 어렵다는 것을 느껴요.”

문채원은 사실 ‘착한남자’ 전에도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러브콜을 받았다. 개중에는 이미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와 드라마도 있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캐릭터들이었다. 굳이 이 드라마처럼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위험한 도전을 할 이유가 없던 셈이다. 그러나 모두 고사하고 이 드라마를 택했다.

“제가 데뷔 전부터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기억을 잃기 전 서은기처럼 안하무인에 계산적이고, 예민하며 싸가지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단지 그런 것을 1차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하는 사랑이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것이었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 같은 캐릭터죠. 그런데 바로 서은기가 그랬어요. 게다가 시놉시스를 읽어보니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난 뒤 전혀 다른 은기가 나오더라구요. 기억상실이라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단순 기억상실이 아니라 사랑스럽기까지 한 것이니 놓칠 수 있나요.”

 
싸가지 없는 재벌 후계자에서 기억을 잃은 뒤 청순가련한 소녀의 감성이 됐다가 다시 기억을 찾아가며 자신을 버린 ‘강마루’(송중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되지만 마루의 진심을 깨닫자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는 캐릭터는 매력적인 반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경희 작가님의 대본은 문어체가 많고 주어가 술어 뒤에 나오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입에 대사를 붙이려고 읽고 또 읽고, 틈만 나면 대본 보고 연습했죠. 카메라 앞에 서면 두려워하기보다는 용기를 냈답니다. 주눅이 들면 준비한 것을 50%도 못 보여주기 때문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용기를 냈죠. 제가 선택한 역할이니 책임을 져야하고, 그게 사랑해주는 시청자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쉽지 않은 캐릭터를 제대로 조리하는 데는 역시 철저한 계산과 사전 준비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었다.

 
기억을 잃기 전 은기는 검정색과 흰색 같은 모노톤의 바지정장을 입죠. 그래야 재벌 후계자로 강하게 키워진 서은기스럽죠. 하지만 기억을 잃고난 뒤에는 파스텔톤의 긴 치마를 입죠. 오직 아련한 기억 속 마루의 사랑을 갈구하는, 전혀 다른 서은기스러워야 하니까요. 보라색 입술이요? 어딘가 아파보여야 하는데 입술에 붉은색을 칠할 수는 없죠. 그렇다고 하얀 입술로 나오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고민 끝에 보라색을 칠했어요.”

단순히 옷차림뿐 아니었다. 상대를 바라보는 것도 기억상실 전후가 달랐다. “기억을 잃기 전 서은기를 연기할 때는 상대를 가급적 안 보려고 했어요. ‘내가 지금 너를 무시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인데 굳이 상대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기억을 잃은 뒤에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에게서 눈을 안 떼려고 했어요. 누구에게서든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서은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극에 이어 현대극으로도 연기력을 인정 받은 문채원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드라마든, 영화든,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모두 열려 있어요. 조급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음 행보를 정하고 싶네요. 사극은 한 번도 쉽게 생각한 적 없지만 특유의 감성이 좋아서 부족하고 미숙한 저이지만 부딪쳐서 고쳐보겠다는 마음으로 꼭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난해 문채원은 상복이 터졌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상에서는 ‘최종병기 활’로 여자 신인상, KBS 연기대상에서는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올해는 ‘착한남자’의 열연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다시 수상을 노려볼 만하다.

문채원은 그러나 고개부터 가로젓는다. “상은 탐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어요. 상을 받아보니 과분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감사한 만큼 책임감도 갖게 됐고, 보답을 해야겠다, 꼭 돌려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죠. 지난해 부족한 제가 너무 과한 상을 받았잖아요. 앞으로 한 동안 더 보답을 해드려야 하고, 돌려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하느라 바빠서 상 받을 시간도 없을 것 같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