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을 등에 업은 여성용 가발 열풍이 거세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발의 주된 사용자는 여성이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중천왕의 왕비가 긴 머리의 미녀를 시기해 가발을 만들어 쓰기 위해 장발을 사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 가발은 부녀자들의 아름다움과 부를 상징하는 필수용품이었다. 가체(加髢)와 다리 등으로 머리를 더욱 풍성하고 높게 만들었다. 가발이 유행하며 사치 풍조를 조장한다는 판단에 1756년 영조 때는 가체를 금지하고 족두리를 대신 착용하도록 할 정도였다.
이처럼 아주 옛날부터 주로 여성이 아름다움과 지위를 뽐내기 위해 만들어졌던 가발. 1970년대 초반 수출 효자 상품으로 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고 탈모로 고민하는 남성 위주로 시장이 성장해 왔다.
하이모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하이모의 남성 고객은 91%를 차지한 반면 여성 고객은 9%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라도 하듯 여성 가발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4000억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 전체 가발 시장에서 여성용 패션 가발은 이미 약 25%를 차지할 정도.
하이모의 경우 여성 고객 비중이 2010년 11%로 뛰어오르더니 지난해 13%까지 늘어나며 여성용 패션 가발인 '하이모 레이디'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이모 관계자는 "최근 패션 가발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는 여성고객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중년 부부가 함께 가발을 구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이런 현장 분위기를 반영해 여성 전문 브랜드를 따로 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여성 탈모 인구수가 남성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있다.
지난 9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 인구는 성별 비율은 매년 약 1.1 수준으로 연평균 증가율을 비교해도 남성 4.1%, 여성 4.0%로 큰 차이가 없다.
성별 진료인원은 남성이 2007년 8만6275명에서 2011년 10만998명으로 약 1만4000명이 증가했다. 여성 탈모 진료 환자 역시 2007년 8만112명에서 2011년 9만3737명으로 약 1만3000명이 증가했다.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여성 진료인원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 여성을 겨냥한 가발 시장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 가발이 단지 휑한 머리를 가리는 기능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 가발 시장은 패션을 등에 업고 블루오션으로 성장하고 있다.
앞머리 가발이나 올림머리를 한 듯 한 모양의 부분 가발, 염색에서 펌까지 완벽한 머리모양을 갖춘 전체 가발 등 종류도 다양하다.
10~20대 젊은 여성을 겨냥한 핑크 에이지, 여성용 패션 가발 사업에 뛰어든 한경희 뷰티, 개성 강한 가발과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위나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경희 한경희뷰티 대표는 "여성들이 관리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쉽게 예뻐질 수 있는 부분이 헤어 스타일링이라는 점에 착안해 헤어 볼륨톡스 글램 업이라는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며 "그냥 가발이 아닌 누구나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패션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여성 가발은 남성 가발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여성의 경우 완전 탈모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이마선이 살아 있는 O자형 탈모가 많기 때문이다.
앞머리 선에 본인 모발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로 정수리 부분만 채워주면 되고 본인 모발의 색상과 두께, 비율 등을 맞추면 더 감쪽같다.
여성 패션 가발은 남성 가발에 비해 훨씬 개방적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도 여성 가발 시장 성장세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가발은 인터넷이나 로드숍, 백화점 등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특히 하이모의 경우 남성용은 로드샵이 없지만 여성용인 하이모 레이디는 개방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패션가발이 위주다 보니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구 압구정 등에도 로드숍을 열었다.
황용웅 하이모 교육실 팀장은 "원래 남성용 맞춤가발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여성을 중심으로 패션 가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며 "여성용 가발의 경우 파마나 스타일링까지 해서 판매하는 맞춤용과 매장에만 들르면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을 로드샵과 온라인 등에서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