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야식당'은 뮤지컬 시장에서 순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흥행코드에 접한 것도 아니고, 훌륭한 배우들이지만 아이돌 같은 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그간 작품에 들인 공으로 관객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자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김동연)
일본 만화가 아베 야로(49)의 베스트셀러 동명만화가 원작인 창작 뮤지컬 '심야식당'이 약 3년 만에 정식으로 문을 연다.
'남한산성'의 작가·작사가 정영(37), '김종욱 찾기'의 작곡가 김혜성(31),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출가 김동연(37)씨 등 뮤지컬계에서 주목 받는 젊은 스태프들이 개발한 작품이다. 올해 1월 두산 아트랩 워크숍 공연으로 첫선을 보였다.
2006년 10월 일본에서 단편만화로 첫선을 보인 '심야식당'은 단행본 누적판매량이 110만부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30만부를 돌파했다.
말 그대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허름한 식당과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다. 메뉴라고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과 맥주, 소주가 전부지만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라면 가능한 만들어주는 특별한 마스터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소소한 음식들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야쿠자, 게이바 마담, 스트리퍼, 노처녀 트리오, 잘 안 팔리는 엔카 가수 등 다양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서로의 사연을 나누고 따뜻하게 위로 받는 곳이다.
'심야식당'의 뮤지컬화를 주도한 작가 정씨는 "창작자들끼리 뜻을 모아 개발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즐거워했다. "개연성 없는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은 세상에 따뜻한 뮤지컬을 선보이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만화 '심야식당'을 보게 됐고, 뮤지컬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죠. 말줄임표가 많은 만화인데 그런 부분을 음악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 것 같아 김혜성 작곡가에게 제안을 했죠. 그러다 따뜻한 연출가가 누가 있을까 하다 김동연씨를 끌어들였어요. 호호호."
프러덕션이 상업성을 위해 기획한 작품이 아닌, 창작자들끼리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 연출은 "만약에 6개월 만에 셋이 모여 만들라고 했으면 헤맸을 작품"이라면서 "리딩을 거치는 등 계속 고민을 하면서 만든 작품이라 원작이 가지고 있는 시간들을 공연에도 녹여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작곡가 김씨는 "처음에는 제작사가 없어 정말 공연이 올라갈 수 있을 지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대박 같은 거창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재미있겠다,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라 애정이 크다"며 웃었다.
만화는 매번 새 인물로 새 이야기를 꾸려가는 에피소드 형식이다. 뮤지컬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 붙여 나기기가 쉽지 않을 법하다. "오래된 식당은 사람들이 정감 있는 시간들이 쌓인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일대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보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에피소드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을 꾀했어요. 음식이 익어가듯 이야기도 익어가는 것이죠." (김동연)
"만화를 보면 단골손님이 등장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잡아서 이야기를 연결시키려고 했어요. 마스터가 손님들의 이야기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식이죠.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도 기승전결을 만들었습니다." (정영)
잔잔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김 작곡가 역시 "음악에 기운을 쓰는 것보다 빼는 것이 힘들다"고 동의했다. "제가 젊고 그루브 있고 까부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자제해야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호호호. 음악이 음식에서 간장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어요. 주 재료는 아니지만 간장이 음식에 스며들어 그 맛을 풍성하게 만들듯, 음악도 캐릭터와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극에는 실제 음식도 등장한다. 만화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문어 모양의 비엔나 소시지부터 계란말이, 고양이 맘마 등 만화에서 입맛을 돋군 음식들이 무대 위에서 그 냄새를 풍기며 관객들을 유혹할 예정이다. 김 연출은 "관객들과 공연 전후에 나눠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귀띔했다.
만화 '심야식당'은 인기에 힘입어 2009년과 지난해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됐다. 한국에서도 일본 드라마 중 처음으로 정식 DVD가 발매되는 등 마니아층을 구축하고 있다. 김 연출은 "드라마를 보면서 느끼지 못한 캐릭터의 강렬함을 무대 위에서 선보일 것"이라며 "만화가 잔잔하지만 캐릭터가 워낙 살아 있어 신나고 역동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나 연기력으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묵묵히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스터'는 송영창과 박지일이 번갈아 연기한다.
40대 노총각 '타다시'로 서현철과 정수한, 게이바 마담 '코즈스'로 김늘메와 임기홍이 더블캐스팅됐다. 험악하게 생겼으나 마음은 따뜻한 야쿠자 '켄자키 류'는 정의욱이 연기한다. 다재다능한 박정표, 최호중은 류의 부하 등 다역을 맡는다. 노처녀 셋 '오차즈케 시스터즈'는 차정화(명란젓), 배문주(매실), 김아영(연어)의 몫이다. 김 작곡가가 음악을 맡은 '김종욱찾기'에서 멀티맨을 맡았던 세 배우 임기홍, 박정표, 최호중이 한 작품에 나온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정 작가는 "기존 작품에서 조연 또는 멀티맨으로 활약한 배우들의 색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밝은 캐릭터로 유명한 임기홍씨가 무대 위에서는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답니다"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의 장점은 따뜻함이라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았다. "요즘 모두가 외롭고 힘들잖아요. 그럴 때 '심야식당' 속 등장인물처럼 뱃속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우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추운날 먹는 따끈한 우동 같았으면 좋겠어요."(김혜성)
"만화에서 갈등을 겪는 인물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제대로 화해하든요. 우리 공연이 음식을 나눠먹는 것처럼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합니다." (정영)
오랜 기간 숙성시킨 작품인 만큼 한 번 반짝이고 마는 작품이고 싶지는 않다. "'김종욱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빨래' 같이 롱런하는 창작 뮤지컬이 됐으면 좋겠어요"(김동연), "시즌제로 만들어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을 내고 여름에는 시원한 음식을 내는 그런 뮤지컬이 됐으면 좋겠어요. 관객들과 함께 추억이 쌓이는 작품 말예요"(정영), "뮤지컬계에서는 참 창작자가 살아남기 힘든 구조이거든요. 이 뮤지컬이 후배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김혜성)
12월11일부터 2013년 2월17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른다. 공연제작사 뮤지컬해븐이 주관하며 엠벤처투자, 인터파크INT가 투자했다. 일본의 만화 출판사 쇼가쿠칸이 제작협력한다. 일본의 무대디자니어 이토 마사코가 힘을 싣는다. 3만~7만원. 컴퍼니다 02-749-9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