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와 연탄가스를 이용해 40대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60대 여성은 공시지가로 40억대 상가건물을 보유한 재력가였다.
이 여성은 매달 900여 만원의 임대수익을 받고 이 가운데 500여 만원을 보험료로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아들 삼아 함께 살 정도로 한때 사랑했던 내연남을 살해하고 보험금을 챙기려 했을 정도로 돈에 대한 집착도 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 내연남에서 양아들로
윤모(64·여)씨는 지난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모(당시 34세)씨를 처음 만났다.
안양을 중심으로 교도소 재소자 교화활동을 해온 윤씨는 폭력배 출신인 채씨에게 연민을 느꼈고, 채씨는 윤씨의 재력에 호감을 느껴 둘은 금새 가까워졌다.
광주광역시 보육원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채씨는 광주에서 폭력 등의 혐의로 수감됐다가 출소해 2000년부터 용인에서 혼자 생활해왔고 윤씨는 1995년 이혼해 친아들 박모(38)씨와 며느리 이모(35·여)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윤씨는 채씨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자 2002년 말 채씨를 안양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했다.
윤씨는 그러나 20살이나 어린 남자와 한집에서 사는 것에 대한 이웃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2004년 2월 채씨를 양자로 입양했다.
둘 사이가 악화된 것은 2006년부터. 채씨의 복잡한 여자관계와 심한 주사, 폭력성으로 힘들어 하던 윤씨는 결국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 치밀한 범행
채씨와의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윤씨는 2009년 11월부터 친아들 부부와 범행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윤씨는 아들 부부와 2010년 1~2월 서울, 안양, 횡성 등지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성분이 함유된 수면제 80여 알을 사고, 채씨 사망시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도 집중 가입했다.
윤씨가 채씨에 대해 가입한 보험은 모두 12개로 수령할 수 있는 금액은 6억7000만원에 달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윤씨는 같은 해 2월 중순 새벽 채씨가 집에서 자주 마시던 홍삼즙에 수면제를 타 마시게 한 뒤 거실에 있는 연탄난로의 덮개를 열고 외출해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위장했다.
당시 경찰은 부검 결과 채씨 시신에서 치사량(1회 복용량의 30~50배) 수준의 수면제 성분이 발견된 점, 채씨 사망 직전 윤씨가 보험에 가입한 점, 윤씨가 119 신고시간보다 7시간여 일찍 집에 갔음에도 신고시간이 늦은 점 등 수상한 점을 확인하고 수사했다.
그러나 피의자들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이를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 재수사에서 드러난 반전
미제로 남을 뻔한 이들의 범행은 지난 5월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기록 일체를 넘겨받아 수사하면서 서서히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윤씨 주거지 컴퓨터에서 윤씨가 사건 발생 이전 수면제를 검색한 사실과 채씨 사망 직전 채씨 앞으로 가입된 보험내역 분석, 채씨 주변인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윤씨 등을 피의자로 특정, 지난 10일 살인 등의 혐의로 이들을 체포했다.
이후 윤씨 아들 부부는 윤씨가 수면제를 구해오도록 지시한 사실과 수면제를 구입해 윤씨에게 건넨 사실, 수사초기 윤씨가 허위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사실 등을 시인했다.
그러나 최초 채씨 사망에 대해 '연탄가스 사고사'라고 주장했던 윤씨는 최근 "내연관계를 끝내기 위해 동반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샀다"고 말을 바꿔 여전히 살인의 목적성은 부인하고 있다.
윤씨는 경찰에서 "공시지가로 40억~50억원대 상가건물과 임야 등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은 그러나 윤씨가 범행 이전 채씨와 여자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고 진술한 점, 윤씨 소유 40억원대 건물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임의처분할 수 없는 점 등으로 미뤄 금전과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등은 뚜렷한 직장과 임대수익 이외의 수입 없이도 매달 수백만원을 카드값으로 지출하는 등 씀씀이가 컸다"며 혐의를 자신했다.
경찰은 이날 살인 등의 혐의로 윤씨와 박씨를 구속 송치하고 이씨를 불구속 송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