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과 혁신과통합이 주도하고 있는 민주진보 통합신당 창당 논의가 민주당 내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민주당은 '혁신과통합', 한국노총, 시민사회 등과 다음달 17일 통합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선출하고 연내 통합신당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 이후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통합 추진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한미 FTA 비준 저지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야권 통합 추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김영춘 최고위원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기에 민주당은 역부족"이라며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한미 FTA를 철폐하고, 새로운 국가 이익을 설계하기 위해 야권통합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미 FTA 국회 비준 이후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늘면서 통합 논의가 오히려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2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당의 비준안 강행 처리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같은 집단 반발에는 지도부의 통합 전당대회 구상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는게 중론이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임기 중 통합 전당대회를 열겠다는 지도부의 입장과 통합 전 민주당 단독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하자는 당권 주자들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박지원 의원과 박주선 최고위원 등 당권 주자들은 무리하게 추진된 지도부의 통합안이 당헌·당규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 당헌 106조는 민주당이 다른 정당과 합당할 때 전당대회 또는 전당대회가 지정하는 수임기관의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당대회를 열기 어려운 사유가 있을 때는 중앙위원회가 수임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당은 23일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통합 추진 권한을 최고위원회에 위임하는 안건을 의결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일부 중앙위원들의 반발로 안건 상정이 취소됐다.
상당수 중앙위원들은 전당대회를 소집하지 않고 중앙위원회가 합당 안건을 의결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가 전당대회를 열기 어려운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중앙위를 수임기관으로 정했다는 것.
박지원 의원은 "왜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가"라며 "소통을 안하고 밀어붙이고 날치기하니까 비난하는데, 밖에서 당하고 나서 집안에 와서 그 꼴을 쓰려고 하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의원은 "질서있고 예측 가능하게 통합하자"며 "정치는 합의가 되면 법을 초월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합의가 안되고 있기 때문에 당헌·당규가 문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도부의 통합안을 놓고 당 내에서 반대 의견이 거세지자 통합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은 차후 중앙위원회의를 다시 소집해 통합안을 의결하기로 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 진영과의 통합도 사실상 추진이 중단됐다. 민노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는 진보정당 간 통합에 합의하고 당내 의견 수렴 절차만 남겨 놓고 있다.
민주당은 혁신과통합 등과 1차적으로 통합을 이루고 향후 '진보 통합'을 통해 출범하는 신당과 2차 통합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민주당과의 통합보다는 '선거 연대'를 선호하고 있어 통합 추진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민노당 김선동 의원의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등에 대해서도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한미 FTA 국회 비준 이후 야권의 결속력이 약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진보 진영은 김 의원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규정하고 끝까지 보호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최루탄 투척이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며 선을 긋고 있다.
기존 정당이 민주당 주도의 통합에 참여하지 않자 정치 세력 중에서는 혁신과통합 만이 실질적인 '통합 파트너'로 남게 됐다. 하지만 혁신과통합과의 합당에 대한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당초 혁신과통합은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를 구성, 민주당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지만 창준위 차원의 합당은 정당법상 불가능하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 이후 독자 창당으로 방향을 틀었다.
혁신과통합은 이번달 내로 중앙당과 시도당 창당 작업을 마무리짓고 민주당과 당대당 통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혁신과통합이 전국 규모의 당 조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두고 총선에서 공천 지분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 발표 이후 당 지도부는 상임고문단회의,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 국회의원-광역자치단체장 연석회의 등을 열어 통합의 대의를 설득했지만 분열음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통합의 분수령은 내주 초 열릴 예정인 중앙위원회의가 될 전망이다. 통합 추진 권한을 최고위원회의에 위임하는 안건이 의결될 경우 통합 논의에 속도감을 낼 수 있지만 지도부가 당내 의견을 수렴하지 못할 경우 통합 로드맵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