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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된 파리 카페, 해산물 플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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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된 파리 카페, 해산물 플레이트
  • 문화부 차장
  • 승인 2012.10.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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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맛있는 집’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에펠탑, 노트르담 사원…. 프랑스 파리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다.

하지만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에게 파리를 내줄 지경에 처하자 독일 총통 히틀러(1889~1945)는 “파리가 적에게 온전하게 넘어가지 않도록 후퇴할 때 남김 없이 파괴해 버려라”고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관 콜티츠(1894~1966) 장군에게 명령한다. 그리고 그해 8월23일 히틀러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마지막 독촉을 하자 콜티즈는 반역자가 되는 것을 감수한 채 “파리는 불타고 있습니다”고 거짓 보고했다.

그의 용감한 거짓말이 있었기에 파리의 수백년된 왕궁들도, 나폴레옹이 세계 각지에서 약탈해온 수천 년된 예술 작품들도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불어 당시에는 수십년, 이제는 백수십년이 넘은 카페들도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곳 중 한 곳이 파리 9지구 오페라 가르니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에 터를 잡은 ‘카페 드 라페’다.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평화다방’이라고 불리는 곳이지만 프랑스의 카페들이 다 그렇듯 한국의 다방처럼 커피나 차만 파는 곳이 아니라 음식도 판다. 아니, 저녁부터 밤 시간에는 카페라기보다는 레스토랑이라는 것이 더 맞을 정도로 식사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빈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에 감탄하며 횡단보도를 건넜다.오페라 가르니에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1825~1898)의 손길로 1862년 오픈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오페라 가르니에라는 느낌이 든다.

카페 둘레에 놓인 테이블에는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캐한 배기가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참을 기다려서라도 그곳에 앉아 선선한 가을 바람 속에서 오페라 가르니에의 야경을 즐기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목적이 만찬을 위해 온 것이어서 눈 딱 감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림이 그려진 높은 천장과 거대한 샹들리에, 금색으로 치장된 벽과 기둥들, 화려한 실내에 압도 당하고 말았다. 내가 식사를 하러 온 것인지, 클래식 공연이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잠시 기다린 뒤 안내를 받아 안쪽 테이블로 향했다. 실내 규모는 웬만한 특급호텔 그랜드볼룸 못잖았고, 좌석은 얼핏 보기에도 200석은 족히 넘었다.

테이블까지 걸어들어 오면서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대체 무엇을 먹고 있을까. 해산물이었다. 바닷가재, 왕새우, 게, 조개, 소라 등 갖가지 해산물이 놓여 있는 2단 플레이트가 테이블 4곳 중 3곳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메뉴판은 역시 프랑스어다.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영어를 알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을 한다는 설도 있지만 요즘 프랑스에서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영어로 답을 한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면 메뉴판이다.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영어 메뉴판은 없었다. 유명 레스토랑들도 마찬가지다. 이곳도 그랬다.

몇 차례 프랑스 여행 경력으로 대충 살펴보니 해산물 플레이트는 총 3종류다. 해산물 종류와 양이 가장 많은 것은 ‘프레스티지’로 150유로(21만5000원), 그 다음은 ‘카페 드 라페’로 55유로(8만원), 가장 적은 것은 ‘카푸치네’로 41유로(6만원)다. 프레스티지와 카페 드 라페의 가장 큰 차이는 랍스터(바닷가재)가 있느냐, 없느냐다. 2명이 먹기에는 너무 버거워 보여 옆 테이블 중국인 관광객들이 먹고 있는 프레스티지의 먹음직스러운 랍스터를 포기하고 카페 드 라페를 시켰다.

화이트 와인과 식전 빵을 먹으면서 기다리니 마침내 손 씻을 따뜻한 물이 담긴 그릇이 나오고 뒤이어 위층에는 게, 닭새우, 조개, 소라 등 해산물, 아래층에는 소스가 담긴 2층 플레이트가 나왔다.

프레스티지와 비교해보니 역시 가격이 3분의 1인 이유가 있었다. 그쪽이 같은 플레이트가 넘쳐날 정도였다면 우리 쪽 플레이트는 뭐랄까 듬성듬성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두 사람이 먹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이것저것 왼손으로 집어들고 오른 손의 도구를 이용해 한참을 먹으니 어느새 포만감이 느껴졌다. 맛은 사실 해산물 맛이라 뭐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새콤달콤한 소스를 곁들이니 모든 것이 천하진미였다.

이곳은 19세기에는 소설가 모파상(1850~1893), 앙드레 지드(1869~1951), 에밀 졸라(1840~1902), 오스카 와일드(1854~1900) 등이 자주 들러 차를 마시며 글을 쓰던 곳이라고 한다.

문득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서는 올 여름 개봉해 조용히 인기를 누린 우디 앨런(77)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파리’가 떠올랐다.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맥애덤스)와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길’(오언 윌슨)이 파리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홀로 밤거리를 걷다가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 1920년대로 타임슬립해 헤밍웨이(1899~1961), 피카소(1881~1973), 달리(1904~1989) 등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로맨틱 야행을 즐기는 이야기다.

이 카페에 앉은 김에 나도 19세기로 타임슬립해 모파상, 지드, 졸라, 와일드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때가 미드나잇(자정)이 아니어서였는지, 프랑스어를 못하니 꿀먹은 벙어리 신세일 것을 알아서였는지 주변에 그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유럽 백인, 미주 백인, 오세아니아 백인, 아프리카 흑인, 미국 흑인, 중국인, 일본인 등 동시대를 사는 각국 사람들로 가득했다.

런치는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디너는 오후 6시부터 11시30분까지다.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는 값비싼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메뉴판을 잘 찾아보면 의외로 저렴한 메뉴도 있다. 플레이트 카페 드 라페도 8만원이지만 2명이 먹는다면 1인 4만원 꼴이다. 비싸다면 비쌀 수 있으나 150년된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수억원을 들여 개보수한 프레스코화 ‘하늘’과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감상하며 맛볼 수 있다면 화장품 하나, 가방 하나 덜 사고라도 가볼 만하지 않을까.

누가 아는가? 19세기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을는지도.

    맛집, 카페 드 라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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