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이라는 용어를 법률상 구체적으로 정의한 것은 2001년에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유일하다. 인권위는 이 법에 따라 같은 해 11월25일 출범했다.
인권이라는 개념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고 인권의 지평을 넓혀 온 인권위가 25일 10돌을 맞는다.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갖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하기 위해'(인권위법 제1조) 탄생했다. 업무의 특성상 입법·사법·행정 '3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 국가기관'으로 설치됐다.
인권위는 그동안 정부와 미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인권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김창국 초대 위원장부터 최영도(2대)·조영황(3대)·안경환(4대)·현병철(5대) 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인권과 관련해 의미있는 활동을 했다. 다만 현 위원장의 경우 평가가 엇갈린다.
이제까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2003년)한 것을 비롯해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2004년), 사형제 폐지 권고(2005년),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2005년) 등으로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내린 반인권 정책들을 개선하는 물꼬를 텄다.
또 이같은 굵직한 사안 외에도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 이주민, 아동·노인·여성, 정보 등의 인권을 보호하고 진일보할 수 있게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 수립도 큰 족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인권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가 치열하게 인권정책을 발굴하고 사회 현안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보며 나서야할 때 조차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인권과 관련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아 갈등이 일었던 것과는 상반된 상황이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는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부조직개편안에 포함했으나 반발이 거세 무산됐다. 그러다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 '소신·철학 부재' 등의 꼬리표를 단 현 위원장이 2009년 7월 취임했고 이후 인권위는 하향길을 걸었다.

현 위원장을 비롯해 인권위원들도 친정부적인 인사들로 '물갈이'됐다. '현병철 인권위'에 반발해 사퇴한 이들의 자리는 친정부 성향 김영혜 변호사와 뉴라이트 논객 홍진표 시대정신 편집인으로 채워졌다.
이와 관련 인권 전문가들은 인권위원장·위원의 자격 검증 제도 마련과 인권위의 위상 제고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인권 전문가는 "법적, 제도적으로 인사 검증 시스템과 선임 절차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인권위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비인권 전문가의 낙하산 인사가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MBC PD수첩 검찰수사에 대한 의견제출건 부결(2009년), 용산참사 주거권침해 법원 의견제출건 부결(2009년), 야간시위 헌재 의견표명건 부결(2010년), 두리반 긴급구제요청건 기각(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진정건 각하(2010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인권보호 의견표명건 부결(2011년)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에 대해 침묵해 비판을 받았다.
예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정파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인권위가 주는 상을 거부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한 인권에세이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여고생은 "자격이 없는 현 위원장이 주는 상은 받고 싶지 않다"며 수상을 거절한 바 있다.
25일로 예정된 인권위 10주년 기념식에는 역대 인권위원장들이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진통 끝에 태어난 인권위이지만 정작 제 식구한테조차 축하받지 못하면서 쓸쓸한 '열 살'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