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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넘어 산…재계 "연말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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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넘어 산…재계 "연말이 두렵다"
  • 박상권 기자
  • 승인 2012.07.06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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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퍼펙트 스톰' 초긴장'…노사관계도 심상치 않아
실적 뒷거름…하반기 개선 조짐 '안보여'

"호재는 없이 악재만 가득하다. 마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상황이 재현된 것 같다."(10대 그룹 관계자)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라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유포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에도 '퍼펙트 스톰'(경제대국들의 동시다발 위기) 경보가 내려졌다.

국내 대기업들은 일제히 비상경영 체제로 돌입, 생존과 시장 확대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국회는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기업을 압박하고, 노동계의 잇따른 파업은 재계를 가시밭길로 내 몰고 있다.

◇'경제민주화'…대중 환심용 '재벌 때리기'

여야는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政綱)에 도입하고 구체적인 정책 방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과거 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 경제의 균형성장과 적정한 분배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재계는 이런 움직임이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재벌 때리기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기업의 주식 소유 현황과 지분도를 공개한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발표가 소유 구조나 기업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겠지만 '경제민주화'라는 명목 아래 기업 때리기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가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부분은 이른바 '낙인 효과'다. 공정위가 총수의 유무나 지주회사 전환 및 순환 출자 여부 등에 따라 임의로 기업을 분류한 만큼 일부 기업이 '나쁜 기업'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총수 없는 집단과 지주회사 전환 집단의 출자구조가 단순하다"거나 "순환출자 구조는 총수 있는 집단에서만 나타난다"는 등의 공정위 해석이 대표적이다. 오너 체제이면서 지주회사를 두지 않고 있는 기업들은 총수가 없고 지주회사 체제인 곳보다 투명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 소유 구조는 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 당시 법과 규제에 적응하면서 나타난 부산물이기 때문에 어떤 체제가 옳고 그르다고 단정짓기 힘들다"며 "공정위가 은연중에 가치 판단을 유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지분도를 계속 공개해 해당 기업들이 불안해지면 투자 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학자들도 힘을 보탰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시장경제 앞에 '사회'라는 말을 붙이면 그 의미가 부드러워지지만, 잘못 활용하면 사회정책으로 적용이 확대된다"며 "경제와 사회정책을 개념적으로 분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우리사회는 권위주의와 독재정치를 거치면서 '민주화'와 '민주주의'는 성스러운 언어가 됐다"며 "경제적 자유를 축소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언어사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수 경제개혁연대 변호사 역시 "시장에서 민주적 질서를 교정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고, 선진국에서도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민들이 재계에 왜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지 비판의 관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 뒷거름…하반기 개선 조짐 '안보여'

국내 10대그룹의 실적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특히 하반기 시장전망 역시 크게 개선될 조짐이 없어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2월 결산 국내 10대그룹((54개 계열사)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IFRS 연결 기준)는 각각 569조3400억원, 40조1479억원으로 전년 상반기 대비 9.87%, 4.67% 증가했다.

삼성(11개 계열사)의 상반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4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65.2% 늘었고,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133조원, 12조2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각각 22.7%, 54.1% 증가했다.

현대차(7개 개열사) 상반기 영업이익은 9조92000억원,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105조2000억원과 9조3900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14.17%, 10.49%, 13.13% 증가하며 호조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LG(10개 계열사)는 주력사인 LG전자의 선방으로 체면을 세웠다. LG의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전망치는 80조5900억원, 4조30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3조100억원이 예상된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각각 2.40%, 6.75%가 증가한 수치다. 반면 순이익은 2.33% 줄어들 전망이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2분기 매출이 13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보다 5.7% 줄지만 영업이익(4100억원)과 순이익(3100억원)은 각각 159.6%, 221.6% 증가하면서 실적을 견인했다. 반면 LG화학의 2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200억원, 3900억원으로 각각 –31.92%, -35.15%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호조세를 이어간 반면 나머지 그룹사들의 실적은 부진한 모습이다.

특히 한화그룹의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각각 9조3400억원, 2800억원, 2400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 대비 각각 4.66% 53.51% 45.01% 줄어들 전망이다.

또 상반기 예상 영업이익기준으로 롯데(1조4800억원)는 전년 상반기 대비 36.79%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됐고, 현대중공업(1조9300억원, -35.73%), 지에스(7000억원, -34.42%), 포스코(2조1800억원, -32.24%), SK(5조9800억원, -21.72%)도 영업이익이 뒷걸음질 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의 곱지 않은 시선…대기업 역할론 강조 '부담'

재계 관계자는 "상반기 실적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들은 장기불황으로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며 "정치권이 경제살리기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 망정 대통령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업 때리기에 나선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기에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 노동계의 연이은 파업도 산업계 전반을 힘들게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노사관계가 예년 같지 않다. 노동부 장관까지 노조를 두둔하고 있어 전임자 문제 등 당면과제 해결이 쉽지 않다"며 "법원이 비정규직 문제까지 노조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기업들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치권도 노조의 투쟁 방침에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조원들 역시 유권자인 터라 양대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모른 척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권과 노조의 등살에 몸살을 앓는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아예 해외로 옮기거나 해외공장 생산량을 늘리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파업으로) 국내공장 생산라인이 멈추면 해외까지 영향을 끼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며 "선거철이면 반복되는 노사갈등 부담을 덜기 위해 생산라인을 해외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솔깃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이 오픈한 첫날인 지난 5월30일, 53건의 법안이 쏟아졌다. 대부분 경제와 관련된 법이었다. 역대 최고 열기다. 지난 총선에서 쏟아낸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내 5대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이 같은 공약은 물론 약간 곱지 않은 시각을 보태면 최종 목적은 '표심(票心)'이다. 일회성이 아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이 같은 입법 경쟁은 포성에 그치지 않고 융단폭격 양상이 예고된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여의도발(發) 입법 전쟁에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최고조 상태다. 여야 모두 매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 강화, 법인세 인상, 출총제 부활 움직임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연간 수백억~수천억원의 추가 비용이 예상되는 만만찮은 이슈들이다.

또 다른 재계 임원은 "경영 환경도 불투명한데, 도와주기는 커녕 기업 하지 말란 말이냐"며 "여기에 예고된 산업용 전기료 인상 등 연말 산업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온통 가시밭길"이라고 불평했다.

한편 재계는 글로벌 경기 위축과 관련해서 그룹별 전략회의를 앞당기고, 다시 한 번 시나리오 경영을 챙기는 분주한 상태로 돌입했다. 삼성, LG를 필두로 하반기 비상경영을 준비하는 컨틴전시 시스템이 재가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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