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서희(40) 김성령(46) 구혜선(28)…. 드라마에서 조선조 9대 왕 성종의 계비이자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를 연기한 이들이다. 이제 이 대열에 인상 깊은 인물 한 명이 추가돼야할 듯하다.
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 폐비윤씨 역을 훌륭하게 해내며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새삼 과시한 전혜빈(29)이다.
2002년 댄스그룹 ‘LUV’로 데뷔한 전혜빈은 10년 가까운 연기 경력에도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쉽게 떼지 못했다. MBC TV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는 ‘24시간 돈다’는 의미의 ‘이사돈’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예능 이미지도 얻었다. ‘이사돈’은 전혜빈의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연기 활동을 할 때는 오히려 독이 됐다.
‘인수대비’는 큰 반응 없이 잔잔한 결과물을 보여주던 전혜빈에게 자랑할 만한 대표작이 됐다. 때로는 표독스럽게, 때로는 애절하게 폐비윤씨를 표현해내며 시청자들에게 ‘전혜빈, 연기 잘하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했으니 말이다.
“데뷔할 때부터 연기자의 길을 가고 싶었어요. 앨범을 낸 건 (연예계) 데뷔를 하게 된 계기일뿐 가수는 제가 할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것도,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첫 이미지는 참 중요해요. 음반은 두 개밖에 안 냈지만 드라마는 15개를 했는데 억울하게도 ‘가수가 연기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배우도 할 수 있고 무대에도 설 수 있다는 것이 제가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폐비윤씨 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5년 전인 2007년 SBS TV 드라마 ‘왕과 나’에서 폐비윤씨가 폐위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설영’을 연기했다. 전혜빈은 ‘왕과 나’에서는 독살로 생을 마감하고, ‘인수대비’에서는 사랑하는 지아비가 내린 사약을 마신 비운의 여인이 됐다.
“설영의 뱀 같은 면에 윤씨의 패악질을 접목시켰죠. 그때 설영 역을 했던 것이 이번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캐릭터 자체도 인연이 있지만 이제껏 폐비윤씨만큼 큰 애착을 가졌던 캐릭터도 없었고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한 것도 처음이에요.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죠.”
전혜빈은 사극 연기와 다이어트를 병행하는 독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사극은 통통하게 나오는 게 예쁠 것 같아서 마음을 풀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화보 촬영을 해야 해서 열흘 정도 물과 레몬만 먹는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를 했죠. 소리 지르고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있어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굳이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전혜빈은 운동을 즐긴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운동을 하거나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잡념을 없앤다.
“몸을 움직이니까 뇌도, 피도 빨리 돌더라구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이 없어요. 운동이 사람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하거든요. 쉴 때도 한 군데 앉아서 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안 하려고 해요. 움직이면서 항상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지요.”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을 듣는 전혜빈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소리 지르고 술수 부리고 패악질을 일삼는 강한 역을 해봤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멜로를 해보고 싶다.
“‘성종’을 연기한 백성현씨와의 로맨스 장면이 너무 없어서 아쉬워요. 사랑하는 장면이 더 있었으면 헤어지는 것도 더 아프게 느껴졌을테니까요. 하지만 비틀린 사랑도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알겠더라구요. 사랑에 빠져있던 모습이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나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아 나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역을 맡고 싶어요. 그 참에 저도 연애 좀 해보고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