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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명다스의 손 시험대 올리다…‘두레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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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명다스의 손 시험대 올리다…‘두레소리’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05.0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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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계에 ‘명다스의 손’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20010년 멜로 ‘시라노; 연애조작단’(감독 김현석), 지난해 만화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 사회고발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 멜로 ‘건축학개론’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한 명필름 심재명(49) 대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시장에서 잘 안 팔리는’ 소외 장르들이었다. 정통 멜로물은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전성기가 지난 장르로 치부됐다. 차라리 270만 명이 본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사정이 나았다. 400만 관객을 눈 앞에 둔 ‘건축학개론’이 막을 올린 3월22일 이전에 개봉한 멜로 영화는 모두 실패한 상황이었다. 미국과 일본제가 독식하다시피 한 만화영화의 사정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마당’으로 200만명 이상의 발길이 몰렸다. 346만명을 기록한 지금에는 누구나 “작은 영화의 기적”이라고 일컫지만 ‘부러진 화살’은 연초에 어울리지 않는 장르였던 것은 물론 대형 상업영화 3편과 함께 개봉했다.

남들이라면 절대 안 했을 영화만 그야말로 골라한 셈이다. 심 대표는 “일부러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은 아닌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됐네요”라면서 “어쩌면 영화의 가치나 주제의식 등에 좀 더 치중했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꼼꼼히 최선을 다한 것을 관객들이 알아준 덕인 듯 하네요”라고 담담히 말한다.

심 대표가 꼽는 성공 요인은 SNS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SNS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2010년 9월에 개봉했어요. 당시 그 달에 트위터로 가장 많은 얘기가 된 이슈로 꼽혔을 정도로 회자되면서 도움을 받았죠.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부러진 화살’은 더할 나위 없었구요. 특히 ‘부러진 화살’은 사회적 이슈까지 됐죠. ‘건축학개론’도 SNS를 통해 호평이 퍼지면서 흥행에 큰 도움이 됐죠. SNS가 여론을 형성하는 분위기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명필름이 만든 영화들이 다행히 화제의 중심에 있었고, 작품 자체도 하루 반짝하고 끝날 영화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SNS를 타고 얘기가 되면서 성공이 따라온 것 같습니다.”

‘건축학개론’은 10년 동안 충무로를 떠돌던 시나리오였다. 모두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던 이용주(42) 감독의 시나리오가 명필름을 만나면서 빛을 보게 됐고, 나아가 정통 멜로물의 흥행기록을 새로 써가고 있다.

“이용주 감독이랑 친분이 있던 친동생 심보경 보경사 대표의 소개로 2009년에 만나게 됐어요. 그때 이 감독은 여러 제작사를 만나 시나리오가 밋밋하다, 심심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좀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채워넣은 상황이었죠. 여주인공 서연이 바람 피우는 의사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로 설정되고 그런 아픔을 안고 첫사랑 승민을 찾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명필름과 만난 뒤에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다 빼고, 절제와 담담함을 찾았어요. 이 감독이 옛날 초고와 가까워졌다고 하더군요.”

흥행성공을 확신했을까. “네!”란다. ‘건축학개론’이 ‘만들기도 어렵고, 투자 받기도 힘들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을 뻗은 성공의 코드 중 하나는 ‘첫사랑’, 또 다른 코드는 ‘납뜩이’였다.

“현재 사랑보다 더 큰 힘은 첫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첫사랑이 고루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포지티브하게 끌어내면 가능하다고 봤죠. 사실 그 동안 첫사랑을 다룬 콘텐츠가 없었으니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에 첫사랑인데 그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 싶었어요. 잘만 만들면 된다고 믿었죠. 덕분에 러닝타임 문제로 편집을 해야할 때 과거 부분은 그냥 두고 현재 부분을 조금 뺐죠. 그래서 원래는 현재 분량이 조금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5대 5가 됐어요. 납뜩이는 비장의 무기였죠. 예전에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접속’과는 다른 유머코드가 ‘건축학개론’의 젊은 감각이고 새로운 면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또 하나, 이 감독과 영화를 준비하면서 누가 납뜩이를 맡든 뜰거라고 했는데 조정석이 120%해줬고 예상대로 잘 되고 있네요. 호호호.”

심 대표는 1995년 명필름을 설립한 뒤 지금까지 영화 32편을 만들었다. 2004년 강제규(50) 감독과 손잡고 MK필름으로 뭉치기도 했지만 2008년 다시 분리해 나왔다. “MK에서 분리해 나오면서 결심한 것이 있어요. 작품성과 흥행성 중 하나는 꼭 잡자는 것이죠. 사실 MK필름 때는 실패작도 많았고, 후회되는 일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를 반면교사 삼기로 했어요. 어차피 작품을 많이 할 것도 아닌데요…. 사실 ‘파주’는 손해는 봤지만 박찬옥이라는 젊은 여자감독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런 마음가짐과 노력 덕분인지 이제는 작품성과 흥행성 양쪽 모두에서 칭찬을 받게 됐네요.”

심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은 역시 명필름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남편 이은(51)씨다. 이 대표는 ‘장산곶매’로 상징되는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을 연출한 운동권 영화감독 출신, 심 대표는 서울극장에서 마케터로 출발한 전형적인 상업영화인 출신이다.

“영화사 기획실장, 마케팅 실장들이 모이는 친목단체에 영화 운동에 참여해달라는 연판장을 돌리러 온 이 대표를 처음 만났어요.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를 만든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상업영화를 하는 저와 전혀 다른, 영화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매료됐죠. 호기심, 존경, 관심이 결혼까지 이어진 것이죠. 이 대표도 중앙대 영화과를 나와서 그때는 독립영화를 하고 있었지만 주류에서 상업영화하는 여자에게 끌렸던 것이구요. 1994년 결혼하고 명필름을 설립해서 영화 동지로 살아오면서 운동권 영화를 한 이 대표와 상업영화의 경험을 쌓아온 제가 가진 두 가지 색깔을 아울러서 중간도 가고, 둘 다 가는, 명필름 색깔의 이유가 만들어진 것이죠.”

신 대표는 영화 제작을 결정할 때 마케팅적인 가능성을 중시한다. “손익분기점을 따져봐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이 돼야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런 신 대표와 명필름이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벌인다. 10일 개봉하는 국악영화 ‘두레소리’(감독 조정래) 배급이다. 물론 이 경우는 신 대표보다는 이 대표의 뜻이 강했다.

“지난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출품된 이 영화를 보고 이 대표가 감동을 받아 판을 벌인 것이죠. 솔직히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배우도 비전문 연기자인 데다 국악은 낯설기는 커녕 관심조차 없으니 말이죠. 그래서 멘토 시사회를 크게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데 걱정이 많아요. 보시면 국악이 주는 본질적인 감동을 느끼실텐데요, 발길을 극장으로 이끄는 것이 관건이죠.”

신 대표의 얼굴에서 살짝 불안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명다스의 손이니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마케팅 포인트를 이미 찾아 놓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서편제’ 이후로 국악영화가 나온 게 없어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가고 있다”는 그녀의 말 속에 해답이 들어있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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