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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자 '문화충돌, 그리고 너그러움의 진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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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자 '문화충돌, 그리고 너그러움의 진화'…역사
  • 유상우 기자
  • 승인 2012.03.08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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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노동은 임금을 받는 보수노동으로, 반면 가사노동은 무보수노동으로 차별화된다. 작업장이 남성의 공간이 되면서, 그곳에서 추방된 19세기 여성은 '행복한 가족'이 사는 '즐거운 집'에서 무보수노동을 하는 경제적 약자가 되었다. 이로써 여성은 가족 구성원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식량 공급자'로서의 전통적 지위도 상실하였다. 보수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아오는 남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문화충돌의 역사, 그에 관한 짧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1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문화충돌(궁정귀족과 부르주아의 성 문화 충돌·나폴레옹에 맞선 스페인 화가 고야), 제2부 19세기 산업화와 파리 노동자 문화(카페와 신문을 통해 형성된 노동자 문화·인상주의 회화와 풍자만화의 노동자 이미지 만들기), 제3부 포스트모던 시대의 록 음악과 애니메이션(저항음악의 역사: 록에서 힙합까지·뒤집어진 세상, 카니발 전통의 부활: 글램록과 펑크록·문명, 가족, 사랑과 행복에 관한 두 개의 시선: 디즈니 vs 미야자키 하야오)를 거쳐 '식탁 위의 문화충돌'로 마무리한다.

바로크 궁정문화에서 디즈니까지 문화 간 충돌에 대한 일곱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정치 혁명이나 종교 전쟁, 심지어 애니메이션에도 충돌의 역사에는 항상 문화충돌이 공존했다. 그런 충돌은 으레 폭력과 상처를 야기하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발견하게 된 '너그러움의 진화'란 바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고야의 그림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모습일까?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에서 소외된 여성들은 어떤 일을 벌였을까?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모든 해답을 제시한다. 자유를 쟁취하고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끝없는 도정에서 저항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종교 전쟁이든 정치 혁명이든 모든 충돌은 어김없이 문화충돌을 수반한다. 혹자는 그러한 문화충돌의 역사에서 전쟁과 전염병 같은 파괴적이며 부정적인 결과만을 찾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여러 번의 충돌을 겪으면서 시행착오도 거치지만 다양한 문화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태도를 발전시키기도 하며, 가장 참담한 충돌 또한 나중에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반성하는 기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충돌이 일어난 후, 이전의 시점으로 시간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의 충돌이 반드시 남기는 흔적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으로 치달은 역사의 상흔과 고통의 시간마저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세월이 흐르며 더 나은 결과를 이끌고 모두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역사 속 문화충돌에서 찾은 '너그러움의 진화'다.

'문화충돌, 그리고 너그러움의 진화'는 독자를 역사라는 시간여행의 길로 이끌기 위해, 서양근대사를 연구하며 문자로 기록한 역사에 회화나 조각상 등의 이미지 자료를 연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저자답게, 풍부한 그림과 사진 자료를 함께 싣고 있다. 일곱 편의 문화충돌 사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전체적인 개관을 프롤로그에 배치하고, 에필로그에는 음식문화 충돌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덧붙이는 구성으로 시간여행자들이 좀 더 쉽고 흥미로운 여행을 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서구 근대문화사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수많은 문화충돌 중 주변집단이 지배집단에 문제를 제기한 경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주변인들이 약자인 현대 사회에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대의 귀족과 부르주아, 나폴레옹과 고야,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 록에서 힙합에 이르는 저항음악…. 중심과 주변의 대립을 통해 발생한 문화충돌과 그 후 일련의 시간들은 다시 일어서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줬다.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롭고 다양한 문화의 경험일 것이다. 그런 욕구를 단시간에 실현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책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생생한 문화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폭넓은 시야를 만끽하는 시간여행자가 돼있을 지도 모른다. 화가는 그만의 예민하고 섬세한 시선을 통해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영역으로 인식을 확장시켜 준다. 소설가나 음악가 역시 마찬가지다. 폭력과 혼돈으로 얼룩진 현실을 그림에 극단적으로 드러낸 고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카페에 앉아 정치토론을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맞장구를 쳐보기도 하고, 자유와 혁명을 부르짖은 '클래시'를 비롯한 펑크록을 들으며 함께 즐겨보기도 하자. 역사라는 시간여행 안에서 서양의 여러 문화와 직접 부딪혀 보며 당시 그들이 가졌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껴보자. 어둠과 불안을 이해할 때 역사를 보는 시선은 더욱 풍부해지게 마련이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역사란 정말 매력적인 학문임을 틀림없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의 등장으로 글램록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런던 교외의 중산층 출신인 보위는 1972년 미국에 상륙, '지기 스타더스트' 11 앨범을 발매하면서 양성적인 외모를 드러냈다. 음악잡지 '멜로디메이커'에서 보위는 연예인 최초로 양성애자임을 선언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 허위였음이 후일 밝혀졌다. 그의 허위 고백은 서구문화에 뿌리 깊은 기독교 전통, 그리고 근대에 와서 오히려 강화된 배타적 성윤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저자 서이자(48)씨는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인문예술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다. 공동역서로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사료해설집으로 '조국이 위험에 처하다', 연구논문으로 '불랑제 사건과 프랑스 사노당의 의회정치 이탈', '개혁, 혁명, 계급 독립성: 프랑스 사노당의 선거활동', '19세기 말 프랑스 노동운동에서 성(GENDER)과 계급(CLASS)', '운명, 구원, 그리고 사회적 몰락: 오이디푸스 왕, 엔젤 하트, 올드 보이로 본 두려움의 역사' 등이 있다. 서양근대사의 지역별, 사회집단별 문화를 비교분석하는 연구, 문자로 기록된 역사에 회화나 조각상 등의 이미지 자료를 연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64쪽, 1만3800원, 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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