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들이 실용성을 중시한 유망학과만을 남기고 취업률이 낮거나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학과는 구조조정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9일 대학가에 따르면 한신대학교는 최근 2013학년도부터 특정 학과의 학생 정원을 감축하려는 계획을 추진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학생들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가 독어독문학과·철학과·종교문화학과 등 이른바 비인기학과를 선정해 내년도 정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국대학교는 2013학년도부터 시행되는 학문구조개편안을 발표해 이에 반대하던 학생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또 지난 2008년 두산그룹이 인수한 중앙대학교는 강도 높은 학과 통폐합을 진행해 여전히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력 없애는' 구조조정
동국대는 2013학년도부터 5개 단과대 11개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문구조 개편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근 학과구조조정에 맞서 총장실 점거농성을 벌인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문예창작학과는 국어국문학과와 통폐합됐고 물리학과도 반도체학과와 통폐합 된다. 또 윤리문화학과는 내년부터 신입생을 뽑을 수 없게 됐다.
학교의 통폐합 추진에 대해 학생들과 교수들은 "교육상품화와 기업식 학과구조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4학년 조승연(27)씨는 "학교가 비민주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은 듣지 않은채 통보 식으로 결과를 발표했다"며 "외부평가나 교육과학기술부 지원금 등에 휘둘려 학과를 재단해 학교 이미지를 높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법학과 박모(24·여)씨는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오히려 대학의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허남결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는 "철마다 경쟁력 없는 학과는 없애고 유망한 학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나아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우리 학교만의 학풍을 지켜나가는 것이 경쟁력 제고에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찾지 않아 학과가 없어진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학생들이 찾는데도 임의로 학과를 없애는 것은 오히려 반시장적인 행태"라고 꼬집었다.
동국대 관계자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대부분은 취업을 원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서비스를 안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학문구조 개편안의 주 목적은 취업률 높은 학과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양한 학문분야를 경험한 교양있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는 필요…취업률로 줄 세우는 통폐합은 이해 못해
중앙대 역시 지난 2008년 두산그룹이 인수한 이래 강도 높은 학과 통폐합 구조조정을 추진해왔고 그 결과 2010년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7개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일본·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학과는 아시아문화학부로, 독일·프랑스·러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다루는 학과들은 유럽어문학부로 통합됐다. 또 가정교육과는 올해부터 신입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중앙대가 학과 구조조정을 단행한지 3년째 접어들었지만 지금까지도 학교와 학생간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대학 연극영화학과는 학과 특성상 낮은 취업률 때문에 구조조정 후보가 됐지만 긴 싸움 끝에 구조조정 대상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과정을 겪었던 영화학과 민모(24·여)씨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과에서 걱정 없이 공부하는 것"이라며 "변화는 필요하지만 학과 통폐합의 기준이 취업률이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준"이라고 비판했다.
사회복지학과 김모(25)씨는 "사회복지학과 위주로 통폐합이 돼 다행이지만 취업위주의 실용학과만 남게 되는 것은 안타깝다"며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폐합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추진해나가고 있는 학교측도 '효율성'과 '경쟁력'을 내걸고 이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앙대 관계자는 "효율적인 집중과 발전에 저해가 될 정도로 너무 많은 학문 단위가 존재했다"며 "통폐합을 통해 소규모로 경쟁력 없이 존재하던 유사중복학과에 대해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통폐합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의 존재가치는 '효율성'이 아니다
대학가에 불고있는 구조조정 바람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가치인 '효율성',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가 대학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대학의 본질적 가치는 학문의 균형발전 이라는 것이다.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대학은 보편의 관점에서 경쟁의 폐해를 바라봐야 하고 수익성이 아닌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 기관"이라며 "최근 학과구조조정은 대학의 기능을 오로지 시장의 하부종속기관으로 예속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 신문사에서 매년 대학평가를 하는데 그 기준 중에 '기업에서 쓸 수 있는 인력을 생산하고 있는가'란 것 밖에 없다"며 "이 평가에 한국의 모든 대학이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고 토로했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은 "최근의 학과 통폐합이 취업이 잘 되는 학과 쪽으로만 이뤄지고 있어 학문의 균형 발전을 무시한다"며 "실용주의적 학문에만 치우쳐 기초학문이 무너지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학문의 균형 발전을 무시하지 않는 선에서 학교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