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달 19일 오후 6시50분께 서울발 동대구행 고속버스가 충북 괴산을 지날 즈음 승객들이 술렁거렸다. 갑자기 이 버스의 운전기사 정모(46)씨가 웃다가, 울면서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운전기사의 황당한 행동에 버스 안은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잠시 후 괴산 휴게소에 버스를 세운 정씨는 20여명의 승객들이 재승차를 거부하자 혼자서 버스를 몰고 대구 쪽으로 향했다.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한 경찰이 버스를 세우려고 했지만 정씨는 경찰의 지시를 무시한 채 약 90㎞를 더 주행했고, 결국 경북 김천 분기점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정씨는 하차를 거부했고 경찰이 출입문을 망치로 부수고 들어가서야 상황은 종료됐다.
경찰 조사에서도 정씨는 연거푸 "대한민국 만세" "성불합시다"라고 외치거나 귀신 이야기를 하는 등 정신질환 증세를 보였다.
# 2007년 2월 A광역시에서는 마약을 투약한 상태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한 40대 운전기사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시내버스를 몰던 운전기사 김모(43)씨가 3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에서 운전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환각상태에서 하루 8시간 동안 많게는 150㎞의 거리를 운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일부 대중교통 운전기사의 난폭 운전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이들에 대한 특별 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일 버스를 타고 출퇴근 한다는 회사원 강상원(38·서울시 강동구)씨는 “가끔 곡예 운전 하 듯 난폭운전을 하는 버스를 탈 경우 아찔한 생각이 든다”면서“정부가 대중교통을 권장하는 것도 좋지만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박봉에도 대부분 친절하게 묵묵히 일하는 버스기사가 일부 난폭 운전기사 때문에 욕을 먹는 것도 안타까운 일”라고 덧붙였다.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이런 지적은 급출발·급제동·개문발차 금지 등 기본 원칙을 무시할 뿐 아니라 승객의 생사를 위협하는 일부 버스 운전기사들의 위험천만한 주행 사례가 종종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이 집계한 통계만 보더라도 2010년 총 8380건의 버스 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며 사상자수는 1만5306명에 달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서도 지난해 버스 민원신고는 1만3151건으로 2007년(7940건)보다 40% 가까이 늘어났다. 가장 많은 민원신고는 승하차 전 출발 및 무정차통과(3043건)였고 불친절(2189건), 난폭운전(1087건)이 그 뒤를 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국토해양부는 버스 운전기사의 '적격성' 여부를 엄격히 검증하기 위해 지난달 사업용 자동차 운전기사 등에 대한 '운전적성정밀검사'를 강화하고 올 8월부터는 버스 운전기사 자격제도를 새롭게 도입하는 방침을 세웠다.
운전적성정밀검사의 경우 인성검사항목 문항을 개선하고 점수 미달자에 한해 정신과 전문의 상담 등을 진행한다. 버스운전자격시험은 기존의 택시운전자격시험, 화물운송종사자격시험 등과 유사한 방법으로 시행된다.
다만 교통관련 법령은 '현재 사업용 버스 운전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법률 시행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신고할 경우 버스운전자격시험을 보지 않고도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적격성 여부에 상관없이 이미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신고'만'하면 계속 업무를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버스 운전기사를 모집하고 있는 관련 업체들의 상황 인식은 이보다 더 심각했다. 서울권 버스 운전기사를 채용하고 있는 A운수와 B교통 등에서는 현 직원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지원자격 또한 정신병력이나 전과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각종 운전기사 취업을 알선해주는 C업체도 실상은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사업용 자동차 운전기사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버스 운전기사 등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직업"이라며 "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실시하고 있는 인성검사로는 (운전기사의 자질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다"며 "인성검사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뻔한 문항에 솔직한 대답을 이끌어 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본인의 동의와 여론의 합의 등 수렴과정을 거쳐 버스 운전기사 등에 대한 정신병력이나 전과 등 객관적 자료를 먼저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런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후에 관리가 되고 있지 않을 경우 회사 내부에서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유치원에서 교사에 의한 성범죄가 일어나면 원장도 책임져야 한다. 이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한 영업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영업하는 사업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직 버스 운전기사들은 일부 '부적격' 기사들 때문에 성실히 근무하고 있는 대다수의 기사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3년째 마을버스를 운전하고 있다는 박모(33)씨는 "경조사 뿐 아니라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일부 '부적격' 운전기사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기사들이 욕 먹는 건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모씨는 "한 달 28일 꼬박 일해, 110만원 월급을 받고 있다"며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도 없는데다 최근에는 허리 디스크까지 얻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운전기사 배모(54)씨는 "직원들에 대한 회사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것이 (최근 문제가 된 버스 운전기사 사고의) 원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장시간 운전에 따른 스트레스는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며 "운전기사에 대한 적격성 못 지 않게 처우 개선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