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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슬픔·분노 그리고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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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슬픔·분노 그리고 한 달
  • 이승호 김도란 기자
  • 승인 2014.05.15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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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여객선 침몰사고가 난지 15일로 한 달째. 사고의 충격만큼이나 온 국민의 슬픔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는 보름만에 30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안산올림픽기념관 임시합동분향소까지 합하면 50만명이 넘는다.

전국 각 도시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130여 곳에도 180만여 명의 조문객이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지난달 16일 오전 안산단원고 2학년생들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에 혼비백산한 학부모들은 학교로 몰렸다. '전원 구조'라는 학교 측의 잘못된 보고에 학부모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곧 학교와 안산시청이 마련한 진도행 버스에 올랐다. 학교에 남은 가족, 떠난 가족 모두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고발생 5시간이 지났을 무렵 첫 사상자가 나왔다는 비보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시신 수습.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닥치자 학부모들은 망연자실했다.

첫날 구조된 172명의 숫자는 그대로 멈춰선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구조당국의 실수로 174명에서 172명으로 한 차례 수정됐을 뿐이다.

사고 첫날 4명, 둘째 날 10명…사망자 숫자는 점점 늘어 한 달 만에 280명을 넘어섰다. 아직도 23명은 실종 상태다.

생존 가능성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사고해역을 떠나지 못하는 학부모들을 뒤로한 채 유가족이 돼 버린 또 다른 학부모들은 안산으로 돌아와 자녀와 마지막 작별을 했다.

사상자 소식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전남 진도에서 경기 안산으로 통곡의 행렬이 이어졌다.

고인을 모실 빈소가 부족해 장례식장 밖에 유가족 대기 천막이 세워지기까지 했다.

지난 14일 현재까지 학생 241명과 교사 7명 등 248명의 장례식이 안산과 시흥, 안양 등 경기지역 20개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20여 명의 학생과 교사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장례비용은 모두 국가가 부담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단원고 학생과 교사 장례비로 50억여 원이 투입됐다. 일반탑승객까지 합하면 55억원이 넘는다.

정부합동 장례지원단 관계자는 "유가족이 장례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학생과 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이 즉시 장례비용을 결제하고 일반 탑승객은 각 자치단체가 지불유예 보증을 해 처리하고 있다"며 "보상금 등 국비가 확정되면 모두 정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장례 도중 세 차례나 고인이 바뀐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관계당국의 허술한 관리는 피멍이 든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희생자가 줄을 잇자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안산시청 등은 합동대책본부를 꾸리고 사고 발생 8일만인 지난달 23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임시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안산 화랑유원지로 합동분향소가 옮겨지기까지 6일 동안 18만385명이 이곳을 찾았다. 정부합동분향소는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을 시작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다. 32만6000명이 넘게 조문했으며 추모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같은 기간 추모 문자메시지도 10만건을 넘어섰다. 전국 각 도시에 마련된 126곳 합동분향소에는 182만3000여 명이 조문했다.

분향소를 찾아 남긴 메모도 안산에만 10만건이나 됐다. 이 메모는 안산시청 기록관에 보존됐다가 추모관이 마련되는 대로 옮겨질 예정이다.

사상 최악, 최대의 참사는 천문학적인 합동분향소 운영비로 이어졌다.

엿새동안 운영된 임시합동분향소 설치비로만 1억5000만원이 투입됐고, 정부합동분향소는 4억9641만원을 들여 세워졌다.



조문객의 헌화를 위해 비치된 국화만 해도 13일 현재 32만4000 송이가 소요됐다. 꽃값만 3억원이 넘는다. 국화가 모자라 한 때는 헌화 대신 근조 리본을 제단에 대신 올리기도 했다.

분향소 안내요원으로 장례 전문인력만 320명이 투입됐다. 자원봉사자가 7550명과 안산시청 공무원 918명까지 합하면 9000명 가까이가 조문행렬을 맞았다.

장례를 마친 안산단원고 학생만 241명. 고인의 부모만 500여 명에 이른다. 꿈에나 나타날까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한 달을 지냈다.

흘리던 눈물이 마를 새라 밝게 웃고 있는 자녀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잠도 못 이뤄 탈진하고, 실신하기 일쑤였다.

합동분향소에 차려진 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진료를 받은 유가족만 300명 가까이 된다. 일반 조문객까지 합하면 754명이 진료를 받았다.

장례식장에서도 지금까지 700여 명에게서 이상 증상이 나타나 응급진료를 받았다. 이 가운데 22명은 증세가 심각해 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했다.

일부 유가족은 슬픔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정부는 분향소 앞에 응급진료 천막을 설치해 이런 상황에 대응하고 또 심리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유가족 등을 위해 안산트라우마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트라우마센터 상담요원 120여 명 가운데 상주 상담사는 46명에 불과해 계속적인 관찰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상담이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유가족의 30% 정도는 상담마저 거부하고 있다.

하규섭 트라우마센터장(국립서울병원장)은 "유가족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고민하고 있다"며 "안산지역 전체가 피해자라는 전제를 깔고 트라우마 치료 시스템을 확대하고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구조 학생 69명은 지난달 30일 일부를 제외하고 입원했던 고대 안산병원에서 퇴원한 뒤 안산 한 연수원에서 심리치유 합숙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곧 구조될 것이라고 믿었던 자녀의 주검 앞에 학부모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후 속속 드러나는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우리 사회 만연한 안전불감증, 무기력한 정부 시스템은 그동안의 눈물이 분노로 바뀌었다.

시민, 국민들도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안산 시민들은 매일 저녁 광장에서 진상규명과 조속한 실종자 수색작업을 주장하는 촛불기도회를 열었다.

지난 9일에는 안산지역 전체 고등학생 학생회가 주최해 1500여 명의 학생이 모인 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은 "잊지 말아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교사들도 동참해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유가족들도 분향소 앞에서 침묵의 피켓시위와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답답했다. 왜 사고가 사건화 돼 가는지 알고 싶었다.

분노는 언론으로 튀었고 이내 정부로 향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수를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한 KBS보도국장의 발언을 문제삼아 8일 자녀의 영정을 합동분향소에서 내렸다. 영정을 품에 안고 여의도 KBS방송국을 항의방문했다.

분노는 다시 청와대로 향했다. 무능한 정부를 규탄했다.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 박모(47)씨는 "선장과 선사,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켜보면서 소리치고 화내고 울면서 한 달을 보냈다. 이젠 따질 힘조차 없다"며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는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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