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바뀌어도 소급 없고, 심의는 지자체 재량
단절된 국가보호체계…책임은 개인에게 전가
"돈을 벌면 기초생활수급비가 깎이고, 나아가 수급자 자격이 박탈될까 봐 돈을 더 벌지도 못한다. 그렇다 보니 돈을 모을 수도 없는 악순환에 빠졌다"
아동양육시설인 그룹홈에서 7년을 보낸 뒤 청소년 쉼터에서 1년을 지내고 성인이 돼 사회로 나온 김은경(23)씨는 힘겨운 홀로 서기를 토로했다. 중도퇴소 잘립준비 청소년인 은경씨는 자립 지원금을 받지 못한 채 생활비를 벌자 수급비가 줄어 생계가 더 막막해지는 처지에 놓였다.
정부 시설에서 보호가 종료돼 사회에 진입한 이른바 '자립준비청년'들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청소년 쉽터로 거처를 옮기는 순간 자립정착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내몰린다. 자립지원수당과 정착금은 단순한 금전 지원이 아니라 사회 정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중도퇴소 자립준비청년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해 주거와 소득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은경씨는 시설 원장과의 소통 문제로 그룹홈을 나온 뒤 원가정으로 복귀했다가 다시 쉼터로 향했다. 시설을 중도 퇴소한 은경씨는 더 이상 수당이나 자립정착지원금을 받을 수가 없었다.
복지부 소관 시설에서 여성가족부 소관 청소년 쉼터로 옮긴 뒤 만 18세가 된 은경씨는 '중도퇴소 자립준비청년'으로 분류돼 제도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은 "아동양육시설에서 중도 퇴소해 청소년 쉼터로 거처를 옮기면 자립정착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도퇴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원가정 복귀 권유, 시설 적응 문제, 진로 갈등, 정신건강 악화 등으로 보호체계를 이동하거나 떠나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그러나 복지행정체계는 복잡한 퇴소 이유를 감안하지 않은 채 '중도 퇴소'로만 규정해 정부 지원을 끊어버려 자립준비 청소년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시설을 떠난 청소년들이 다시 자립지원수당을 받기 위한 보완 대책이 마련됐지만 허점도 많다.
아동복지법은 2024년 2월 15세 이후 보호가 종료된 아동·청소년 중 다른 시설 입소나 조기 취업, 대학 진학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만 18세가 되면 자립지원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됐다. 중도퇴소 자립준비청년의 제도적 지원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은경씨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개정법은 2006년 2월 9일 이후 출생자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2002년생인 은경씨는 소급 적용을 받지 못했다.
생계난에 직면한 그는 행정복지센터와 구청, 시청을 오가며 자립지원수당 신청 가능성을 문의했다.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아동복지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자립지원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경씨는 지자체로부터 "심의·의결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답만 들었다. 아동복지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열리는 지조차 알 수 없었고, 결국 심의 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사이 은경씨의 자립지원금 수급 시한은 지난해 3월로 종료됐다.
지원금 받지 못한 은경씨는 성인이 되자마자 월세와 생활비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낮에는 카페에서, 밤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하지만 소득이 생기자 그나마 생계에 도움을 줬던 기초생활수급비가 줄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투잡을 뛰던 상황에서 수급비가 줄면서 생계 유지가 어렵게 된 셈이다.
자립준비청년 플랫폼 '하랑이랑'의 권용우 대표는 "중도퇴소 자립준비청년은 때로는 자립준비청년보다 더 취약한 상황에 놓이지만, 지금까지는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받지 못 해왔다"고 지적했다.
자립준비 청소년에 대한 사후관리 체계는 부실하다. 사후관리 인력이 부족한 데다 부처간 협력체계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2025년 아동보호서비스 업무매뉴얼'에 따르면 보호시설 이동이나 원가정 복귀 이후에도 일정 기간 사후관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사후관리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 대상자는 8586명인 반면, 자립지원 전담인력은 230명에 불과해 1인당 평균 37명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서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월평균 73명 이상의 보호아동을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관리를 위한 부처 간 협력체계도 미흡하다. 관할 부처에 따라 관리 주체가 달라 기관 간 협력이 원활하지 않아 보호 대상자가 누락되기도 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서비스를 (시설에) 입소하면 시작되고 퇴소하면 끝나는 것으로 봐선 안 된다"라며 "원가정, 시설, 지자체가 연결되어 퇴소 후에도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통합적 복지성과 협의체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여러 부처에 흩어진 아동 청소년 관리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처, 기관, 법이 달라 생기는 사각지대와 차등 지원을 해소하라면 부처 통합과 체계 통합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은경씨는 "쉼터퇴소 청년이든 중도퇴소 청년이든 결국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라며 "용어를 구분 짓는 것보다 제도 밖 아이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포용적으로 법을 개선하고,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박수봉 초록우산 임팩트사업본부장도 "현장에서는 중도퇴소 자립준비청년들의 지원 공백을 줄이기 위해 민간 차원의 사례 상담과 제도 연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실질적인 공백 해소를 위해서는 통합된 아동·청소년 관리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