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기관 집중 점검…“기준 뭐냐” “투서 우려”
대통령실, 이튿날 정책감사 폐지·파격포상 발표
공직사회 달래기?…‘병주고 약주기’ 회의적 반응
정부가 총리실 주관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한 공직자들을 색출하기로 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튿날 우수 공무원 파격 포상 등 공직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내란 청산 조사와 공무원 처우 개선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하루 사이 상반된 정책을 두고 ‘채찍과 당근’이라는 반응도 나오면서 당분간 공직 사회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불법계엄 가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내란 수사와 재판이 1년이 다 되도록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내란 가담자가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등 공직사회 내부의 반목이 확산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조사로 관련자에 대한 징계 등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은 감사원과 국가정보원,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처 등 대통령 직속 기관을 제외한 49개 중앙행정기관이다.
정부는 이 중에서도 계엄과 관련해 의혹이 제기된 군, 검찰, 경찰, 총리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국방부, 행안부, 문화체육관광부, 소방청, 해양경찰청 등 12개 기관을 ‘집중 점검’ 대상으로 설정했다.
정부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내년 2월 13일까지 인사 조치를 마무리하는 등 ‘내란 청산’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집중 점검 대상 기관을 중심으로는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미 특검이 주요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한 상황에서 왜 일선 공무원들까지 정부 조사 대상에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한 4급 서기관은 “특검이 있고 주요 공직자들은 전부 수사를 받고 있는데, 왜 갑자기 우리 같은 공무원까지 그런 일에 엮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밑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특히 내란 가담 행위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비상계엄을 전후(6개월 전~4개월 후)해 내란에 직접 참여하거나 협조한 행위를 조사 범위로 밝히면서 ‘단순 동조’ 등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조사 방식 중 하나로 ‘내란행위 제보센터’를 운영하기로 하면서 무분별한 ‘투서’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방의 한 검사는 “투서만 난무하다가 가뜩이나 안 좋은 내부 분위기가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고, 경찰 관계자도 “평소 싫어하던 사람을 내란 행위로 엮어 제보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억울한 사람이 분명히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날인 지난 12일 대통령실이 ‘공직활력 제고 성과와 추진 과제’를 발표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주요 내용은 공직 사회의 감사 공포를 없애기 위해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를 법제화하고, 비효율적으로 밤을 새는 정부 당직 제도를 전면 개편해 재택 당직과 인공지능(AI) 민원 응대를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이례적으로 성과를 낸 공무원에게 1인당 최대 3000만원을 파격적으로 포상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재난·안전 공무원의 수당은 2배 상향하고, 5년 미만 군 초급간부 기본급은 최대 6.6% 인상하는 방안도 담겼다.
대통령실은 이미 지난 7월 이러한 공직사회 활력 추진 방안 계획을 밝히고, 100일 내 성과를 보고하겠다고 한 만큼 갑작스런 발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날 내란 가담자 청산 계획으로 공직 사회가 크게 술렁인 상황에서 다음날에는 공무원 처우 개선이 발표되면서 정부가 ‘공직사회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물론 그간의 문제로 지적돼온 사항들이 개선되는 만큼 공직 사회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정책감사 폐지와 관련해 “국회가 해야 할 정책적인 판단을 그동안 감사원에서 영역을 넓혀와 공무원들이 일하기를 회피하는 측면이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정책감사 폐지를 법제화하는 건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란 청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안은 ‘병주고 약주기’, ‘채찍과 당근’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많은 모습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내란 가담 공무원을 조사하겠다는 것과 정책 감사 폐지나 파격 포상을 하겠다는 것이 어떻게 체급이 같겠냐”며 “물론 환영할 내용이기는 하지만 공무원 조사와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부처의 공무원도 “당직 폐지 등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당연히 해야 될 일 아니겠느냐. 그게 뭐 엄청난 당근책이 될 수 있겠냐”며 “내란 가담 공무원을 조사하겠다는 것과 비교해서 달래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의 내란 관련 인사 조치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당분간 공직 사회의 동요와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말연시 인사철을 앞둔 만큼 몸 사리기와 복지부동에 주력하거나 공무원 처우 개선이 임시방편에 그칠 경우 국정운영 활력과 공직사회 신뢰가 더욱 떨어질 것이란 우려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책감사 폐지나 당직 개편, 파격 포상 등이 진정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일시적인 분위기 전환용으로 비춰진다면 오히려 공직 사회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무원에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내란은 반드시 청산돼야 한다”며 정부 조사에 성실히 협력할 것을 밝히면서도 “헌법에 반하는 지침이나 위법한 지시가 내려와도 거부하기 어려운 현실이 내란 사태를 초래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