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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의 덫'에 발목 잡힌 생사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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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의 덫'에 발목 잡힌 생사의 순간
  • 송창헌 기자
  • 승인 2014.04.21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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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구간에서 왜 경험이 부족한 3등 항해사가 운항 지휘를 했을까' '왜 가까운 진도를 놔두고 제주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으로 신고했을까'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은 사고선박인 '세월호'의 오랜 습관, 즉 관행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세월호가 물살이 빠르기로 소문난 맹골수도(孟骨水道)를 지나다 급선회→표류→침수→침몰로 이어지는 참사의 늪을 헤맬 당시 운항책임자는 3등 항해사 박모(25·여)씨.

입사한 지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신참인데다 고(高)위험 맹골수도는 단 한 번도 지휘해본 경험이 없었고 결국 공교롭게도 배는 막내 항해사의 통제 아래서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위험한 지점을 막내가 맡을 수 밖에 없었던데는 묵은 관행이 작용했다. 항해 교대시간으로 1등 항해사는 오전 4∼8시와 오후 4∼8시, 2등 항해사는 낮 12∼4시와 자정∼새벽 4시, 3등 항해사는 오전 8시∼낮 12시와 오후 8시∼자정에 근무한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관행화된 '룰'이다.

경력이 짧고 경험이 적은 3등 항해사에게 비교적 편한 시간대에 근무를 맡기기 위한 것으로 세월호 사고 시각에는 1등 항해사에 이어 3등 항해사가 당직을 서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호가 안개 때문에 인천에서 2시간30분 가량 지연출항한 사실을 적용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당초 계획대로 15일 오후 6시30분에 정상 출발했고 소요시간이 13시간30분인 점을 감안하면 맹골수도를 지날 즈음, 항해책임자는 1등 항해사가 맡았을 공산이 크다.

여기에 대체 선장이 아닌 본래 선장이 휴가를 가지 않고 배를 지휘했더라면 좀 더 효율적인 통솔과 책임감있는 승객 대피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예정대로 출발했다면 다른 항해사가 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선장이 위험지역을 처음 운항하는 3등 항해사를 감안해 직접 지휘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배가 침몰되는 순간, 교신 과정에서도 관행이 발목을 잡았다. 세월호는 맹골수도에서 침몰 위기를 맞자 오전 8시53분 제주VTS에 위기상황을 알렸다. 가까운 진도VTS를 두고 먼 제주까지 연락한 까닭은 간단했다. 출항 당시 목적지인 제주VTS와의 교신을 위해 주파수 채널을 12번에 맞췄고 조난 순간에도 늘 그랬듯 12번과 교신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해묵은 운항 관행이 결국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구조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신고를 받은 제주VTS는 다시 진도VTS에 상황을 전파했고 결국 천금과도 같은 구조시간은 5분 이상 지연됐다. 이어 진도VTS는 1분 뒤인 9시6분에 세월호에 교신을 연이어 두 차례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세월호, (여기는) 진도VTS. 감도 있습니까(들립니까)", 진도VTS는 다시 급박하게 세월호를 찾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인근 해상의 다른 선박과의 교신을 통해 세월호의 존재를 확인했다. 결국 세월호는 3번째 교신 시도 끝에 첫 응답을 하며 뒤늦게 구조를 요청했다.

전 세계 모든 선박이 긴박한 상황을 주변 관제소나 선박에 알려주는 국제조난수파수인 '채널 16번'을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합수부는 세월호가 채널 16번을 사용하지 않아 구조 시간을 지연시키는 등의 과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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