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청 노동자가 원청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제3조 개정안)’이 지난 8월 24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6개월 후 시행하게 됐다. 그동안 경영계의 ‘노란봉투법’ 흔들기도 이제 막을 내려야 할 듯하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을 ‘국제 기준’에 맞추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정당화하지만, 경영계와 야권은 사용자의 투자 의욕을 낮춰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국내외 기업의 ‘엑소더스(Exodus │ 대탈출)’를 경고했다. 특히, 경영단체들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사용자 범위 확대와 노동쟁의 개념 확대로 줄 파업을 양산할 수 있고 생산성 향상은커녕 노(勞)·사(使)가 공멸할 것은 물론 산업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고 총공세를 펼쳐왔다.
하지만 이날 국회 본회의 표결은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한 가운데 재석 의원 186명 중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통과됐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사업주 책임을 확대해 하청업체와 원청업체의 직접교섭을 허용해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교섭권을 보장하고 합법적 파업과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해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 확대(하청 노조가 원청기업과 교섭), ▷노동쟁의 범위 확대(경영상 결정 이유로 파업 가능), ▷사(使)측이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는 단서 조항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기울어진 노·사 관계를 바로잡고 정상화하는 출발점이 될 ‘노란봉투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반기고 환영하며 조속히 사업현장에 안착하기를 바란다. 이제는 소모적 정쟁을 삼가고 ‘노란봉투법’을 노·사 상생의 출발점으로 삼는 전향적(轉向的)인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도 재계와 야권의 이런 지적 가운데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잘 헤아려, 준비 기간 우려와 반대를 열린 자세로 수용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들여다 보면 2003년 창원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부산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열사의 한(恨)과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 2022년 거제 대우조선해양 김형수·유최안 등 하청 노동자들 눈물을 닦아줄 법(法)이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처분에 배달호·김주익 노동자가 죽음으로 항의했던 게 2003년이다. 이후 2014년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에 대해 47억 원을 손해배상 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뒤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으면서 입법운동이 촉발됐고,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에 대한 47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계기로「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개정은 탄력이 붙었다. 2015년 처음 법안이 발의되고 추진과 폐기를 거듭한 지 10년 만의 쾌거이자 개가다. 2023년 11월과 2024년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전임 대통령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무산됐다가 ‘2전 3기’ 만에 입법화의 꽃을 피웠다. 지난 20년간의 지난(至難)한 입법 과정을 돌이켜보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넘어 이제라도 결실을 보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난날 무분별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가 노동자와 그 가족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것을 지켜본 시민들의 분노가 입법 촉구로 이어져 왔다. 8월 24일 국회 통과 직전까지도 경영계와 국민의힘은 산업 현장의 질서를 파괴하는 법안인 양 공포 마케팅을 벌였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노란봉투법’은 산업 현장의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고 상생적 노·사 관계의 새 틀을 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했다. 또 노조의 합법 파업 범위를 ‘노동 처우’와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으로 넓혔다. 사용자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조건에 단체교섭, 쟁의행위 외 선전전·피케팅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추가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사업주 책임을 확대해 하청 업체와 원청업체의 직접교섭을 허용하고 합법적 파업과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의 삶이 파탄 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런 입법 취지가 반영된 법원 판단이 이미 나온 바 있고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등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산업 현장에서 만연한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일상화된 노동권 침해와 산업재해 위험성 증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최근에는 중대 재해 피해가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입법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통해 이득은 취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부당한 관행을 끝내자”라는 노동계 요구에 여론도 우호적으로 보였다.
특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조 개정안은 걸핏하면 불법 딱지가 붙여지던 노동쟁의 범위를 종전보다 더 넓혔다.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항하는 행위는 정당방위 원리를 끌어와 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했고, 개별 노동자의 배상 책임 비율은 관여도 등 구체적 근거에 따라 정하도록 했다. 「대한민국헌법」상 보장된 ‘노동 3권(노동자 단결권·단체 교섭권·단체 행동권)’이 좀 더 충실히 보장되도록 관련 법제가 정비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실로 크다. ‘노란봉투법’은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법 시행 전에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노동쟁의 범위, 교섭 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대한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하도록 보장하되, 갈등이 불거졌을 때 입법 취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적극적 중재에 나서고 필요하면 보완 입법도 추진해야 한다.
재계와 보수세력은 여전히 ‘노란봉투법’을 반(反)기업법이라고 호도하지만, 사업장의 갈등·분쟁을 교섭이 아닌 손해배상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입법은 실질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용자를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를 법에 명문화하는 것일 뿐이다. ‘무늬만 사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용자의 교섭 의무가 명확해지면, 오히려 노·사 간 소모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속에서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전향적으로 개선되는 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6개월 남은 시행 준비기간 동안 노·사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세부 지침과 매뉴얼(Manual)을 마련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부작용을 과장하고 왜곡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귀담아들을 우려도 적지 않아 보인다. 경영계는 “경영상 결정을 이유로 쟁의할 수 있으면, 공장 해외 이전도 파업 사유가 된다.”라고 주장해 왔고, 법조계는 “조항이 추상적이어서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해 왔고, 학계는 ‘노란봉투법’이 도입될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선 연간 약 10조 원, 외국인의 한국 투자는 연간 1.5%(약 4,000억 원) 손실이 예측된다고 추정해 왔다. 따라서 주요 쟁점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현장에서 제기되는 우려들을 해소할 구체적 지침과 정교한 매뉴얼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실질적으로 산업 현장에 조기 안착하도록 시행하는 일뿐이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시행령 등을 통해 최대한 명확히 규정해 법적 분쟁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줄이고, 산업 재편이 시급한 업종에 대해서는 노(勞)·사(使)·정(政)이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또한,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여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의 방어권 보장 방안에 대한 논의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회, 노·사 모두가 지혜를 모아 정교한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