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 8월 13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고 이재명 정부 5년의 국정 청사진을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새 정부 국정 지향점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아래 3대 국정 원칙, 5대 국정 목표, 123대 국정과제와 이를 뒷받침할 재정지원 및 입법 추진계획 등이 광범위하게 담겼다. 내란 사태를 겪고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새 정부 국정운영의 설계도이자 나침반으로, 향후 국정운영의 평가 기준으로 국가 정상화와 도약을 향한 국민적 열망과 역사적 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사뭇 특별하다.
먼저 새 정부 국정운영의 지향점이 될 ‘국가 비전’으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 제시됐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일상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를 반영하는 국정을 실현하겠다.”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고,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행복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라고 밝혔다. 조기 대선으로 인수위 없이 정부가 출범한 지 70일 만이다. 일상적으로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를 반영하는 국정을 실현하고, 국민 모두의 행복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획위 안을 면밀하고 신속하게 검토해 최대한 이행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3대 국정 원칙’은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로 정해졌으며, ‘5대 국정 목표’는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로 각각 정해졌다.
‘5대 국정 목표’를 위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과 정책발표문을 중심으로 23대 세부 추진 전략과 123대 국정과제가 설정됐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첫 번째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를 해서는 ‘1호 국정과제’로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헌정 체계 실현을 위해 개헌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히고 검찰·경찰·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집중된 권한을 개혁하고, 군의 정치적 개입을 방지하는 한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방송·미디어의 공공성·자율성·신뢰성을 회복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두 번째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를 위해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진짜 성장’ 전략과 R&D(연구개발) 예산 확대를 통한 과학기술 5대 강국 실현, 100조 원대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을 통한 미래 전략산업 투자와 ‘에너지고속도로’ 등을 통한 탄소 중립, 기후위기 대응 등이 포함됐다. 세 번째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부분에서는 ‘5극(5개의 초광역 경제권) 3특(3개의 특별자치도)’ 중심 지방 거점 조성과 세종 행정수도 완성, 세제 개편을 통한 지방재정 확충을 포함해 서민과 소상공인의 채무조정 및 지역 상권 활성화, 공정과 상생의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 등이 주요 과제로 적시됐다. 네 번째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위해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과 함께 산재에 대한 국가 책임의 실현,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노조법 2·3조 개정 등에 나서기로 했다. 다섯 번째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화해·협력으로 전환하고, 국익 중심 실용외교 기조 아래 한미동맹을 고도화하는 한편 외교 다변화를 추진하면서 ‘방산 4대 강국’ 도약과 인구 감소 등에 대비한 국방 개혁 등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이 가운데 다(多)분야에 걸친 ‘12대 중점 전략과제’도 함께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진짜 성장’ 전략과 코스피 5,000시대, ‘AI 3대 강국’ 도약, 에너지고속도로를 통한 탄소 중립,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대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대 특별자치도를 뜻하는 ‘5극 3특’ 중심 국가 균형 성장,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공존 기반 구축 등이 주요 과제로 적시됐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주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2025년 예산 대비 향후 5년간 210조 원을 추가 투자하는 재정투자계획을 마련했는데, 세입을 확충하고 강도 높은 지출 효율화 등을 통해 추가 재정 부담 없이 이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날 발표된 국정과제를 향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국가미래전략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이행 상황을 계속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는 정부의 검토와 국무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공개한 123대 국정과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집대성하고 구체화했다. 정치, 경제, 균형 성장, 사회, 외교 안보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는 데 이를 요약해보면 헌법 개정부터 코스피지수 5,000 달성까지 전 분야가 망라됐지만, 불법 계엄으로 무너진 한국 사회를 바로 세우고, 0%대로 추락한 경제성장률을 높여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 집약이 된다. 첫 번째 ‘정치 분야’에서는 1호 국정과제로 제시한 권력분산형 개헌 추진과 검찰·감사원·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과 군 정치적 중립 강화 등 19개 과제가 포함됐다. 두 번째 ‘경제 분야’에서는 인공지능(AI)·에너지 고속도로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확대해 과학기술 세계 5대 강국 기치를 내걸고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AI고속도로’ 구축, 국민성장펀드 100조 원 조성, 메가 특구 도입 등 29개 과제가 제시됐다. 세 번째 ‘사회 분야’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 국민 안전에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이자고 했다. 무엇보다 ‘균형 성장’을 위해 ‘5극 3특’ 중심의 혁신·일자리 거점 조성과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으로 지방시대 초석을 깔고, 외교·안보 분야에선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제시하고 산재보험 국가책임제, 농어촌 기본소득,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등 가장 많은 37개 과제가 담겼다. 최근 국무회의 등에서 드러난 안전·노동·복지 분야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정의롭고, 안전하고,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에 합당한 국정 방향 설정이라 평가하고 반기며 환영한다.
하지만 관심을 끌었던 정부조직 개편 방안은 이날 발표에서 빠졌다.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의 얼개는 사전에 대통령실에 보고됐다지만 이번 발표에 빠진 건 다행이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읽힘이어서다. 출범 초기부터 조직개편을 서두르면 자칫 공직 사회에 대혼란을 초래하고 국정 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편으로는 벌써 공무원들의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갈수록 심화하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 관련 정책도 원론적인 수준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 국정과제 실행 재원도 문제다. AI 육성과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 등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으려면 5년간 210조 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비과세·감면 정비 등 세수확충으로 94조 원, 강도 높은 지출 절감으로 116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역대 정부가 늘 해오던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무엇보다 저성장 국면에서 세수를 확충한다거나 이미 사용처가 정해진 예산을 줄이는 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씨를 한 됫박 뿌려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증세 대신 국채 발행을 시사했다. 결국엔 국민에게 ‘증세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어 불안하다.
무려 123개에 달하는 모든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달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의 공약 이행률은 평균 44.7%에 그쳤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과제는 저성장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혁신과 성장동력 회복에 자원을 집중, 성과를 내면 다른 대부분 과제 해결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국민은 5년 후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이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재명 정부는 거창한 계획보다 시급한 과제를 강력히 추진하는 데 동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 기조 아래 한·미 동맹 고도화와 외교 다변화를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화해·협력으로 전환해 ‘한반도 리스크’를 ‘한반도 프리미엄’으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를 파탄시키고 민생을 나락으로 내몬 윤석열 정부도 장밋빛 보고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정과제가 말의 성찬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과제마다 구체적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고, 부처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만 한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정과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함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주식 양도소득세 같은 지엽적인 세금부터 방향을 바로 잡고 갈팡질팡하는 정부와 여당의 모습을 보여서는 결단코 아니 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조세의 기본 원칙부터 바로 잡고 정상화하되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을 위해 국민과 숨결을 호흡하고 국민과 함께 혁신과 성장의 선택과 집중으로 성과를 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