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에 때 이른 6월 폭염(暴炎)과 ‘극한호우(極限豪雨 │ extreme rainfall)’가 지나고 본격적인 ‘극한 폭염’에 국민 고통이 가중된 와중에 민생 치안마저 불안해질 조짐이 커 보인다. 지난 7월 26일 경기 의정부시 노인보호센터에서 스토킹(Stalking) 피해를 수차례 호소했던 여성이 흉기에 찔려 안타깝게 숨졌다. 지난 7월 20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제 총기 살인 사건 현장에선 경찰의 대응에 허점이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국민 불안은 가히 충격적이다. 엿새 만에 강력 사건이 또 터지면서, 우리 사회 안전의 마지막 보루인 치안 공권력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월 26일 오후 경기 의정부시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홀로 근무 중이던 50대 여성 사회복지사가 스토커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은 피해자를 스토킹해온 60대 남성을 용의자로 추적했고, 다음 날 사망한 용의자를 인근 수락산 등산로에서 발견했다. 피해 여성은 숨지기 전까지 스토킹 행위를 3차례나 신고했고, 경찰 보호 대상이었음에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경찰은 접근 금지 명령, 통화 금지 등의 긴급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경찰이 직권으로 할 수 있는 조치만 시행했을 뿐이다. 검찰과 법원의 허락이 필요한 전자발찌는 별도로 신청하지 않았다. 결국은 범인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없었고, 사건 당시 피해 여성은 경찰에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차지 않고 있어 누르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번 의정부의 스토킹 참극은 지난 6월 10일 대구에서 스토킹 피해 여성의 신고에도 가해자가 주거지에 몰래 침입해 살해한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많아 보인다. 경찰은 당시 스토킹 범(犯)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고, 여성 집 앞에 가해자 얼굴을 인식할 수 있는 보안 카메라까지 설치했지만, 가해자가 아파트 외벽 가스관을 타고 침입해 소용이 없었다. 현재의 스토킹 범죄 대응 시스템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허술한 스토킹 범죄 대응 시스템과 사법당국의 소극적 조치가 부른 참극(慘劇)이 아닐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가해자에게 위치추적장치 부착, 구속, 구금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데도 대다수의 경우에는 검찰이나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스토킹 살해를 거드는 결과를 낳고 있어서다. 이번 의정부에서도 사건 발생 6일 전엔 피해 여성의 집을 다시 찾아온 남성 스토커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검찰에 접근금지, 위치추적 등이 가능한 ‘잠정조치’를 요청했으나 이번엔 검찰이 스토킹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경찰과 검찰의 미흡한 대응이 잇따르면서 스토킹 살인을 막아낼 3번의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셈이다.
지난 2022년 9월 14일 밤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신당역사에서 근무하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이른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에 신경 쓰겠다고 한 경찰의 다짐이 무색하다. 지난 5월 12일 오전 10시 41분께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30대 남성이 스토킹하던 전 연인인 3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신변 보호를 받던 피해자는 경찰에 구속수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한 달여간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 6월 19일 인천에도 60대 여성이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지난해 12월 가정폭력으로 신고당해 법원으로부터 아내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는데, 지난 6월 12일 접근금지 명령이 풀린 지 일주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2021년 3월 23일 서울 노원구에서 발생한 ‘세 모녀 살인 사건’ 다음 날인 2021년 3월 24일 ‘스토킹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해 2021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종합적인 피해자 보호 제도 마련을 위해 2023년 7월 18일부터 「스토킹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흉기를 휴대할 경우 최대 징역 5년, 가중처벌할 요소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하고 일반 스토킹은 최대 3년까지 강화된 양형 기준을 적용하도록 권고한 바 있음에도 스토킹 범죄는 계속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법원도 구속영장 심사에서 스토킹 범죄가 재발 및 보복 위험성이 높다는 특성을 감안해야만 할 것이다. 2022년 ‘신당역 사건’도 범인이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석방된 뒤 벌어졌고 지난달 대구 스토킹 살해 사건도 경찰이 가해자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벌어졌다. 스토킹 범죄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법원의 영장 전담 판사들이 이러한 상황을 각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021년 1만 4,509건에서 지난해 3만 1,947건으로 3년 새 2.2배 이상이나 급증했다. 경찰이 직권으로 접근 금지 명령 등을 내리고는 있지만 이런 조치들은 사실상 가해자의 자발적 협조에 기대하고 있는 수준이다. 이것만으론 집요한 스토킹 범죄를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보다 더욱 근본적인 대책은 가해자 동선을 사전에 감시하고, 필요한 때에는 가해자 신병을 확보해 범행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뿐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전자발찌 부착이나 가해자 구속 등 보다 강력한 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취해야만 한다. 가해자가 전자발찌를 차도 원격 위주인 경찰의 신변 보호엔 한계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전자발찌를 찬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하면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나 스마트폰을 통해 경보를 울리는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실제 스토킹 피의자에 대한 구속수사 비율은 기껏해야 3~7%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최근 들어 감소하는 추세(2021년 7%, 2022년 3.3%, 2023년 3%, 2024년 3%)다. 영장을 신청하는 검찰이나 발부하는 법원은 현장 경찰과 비교해 피해의 심각성과 강력범죄 위험성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게 일반적인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죽어야 끝이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끈질기다. 단 한 번의 미행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피해자는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 스토킹임을 스스로 증명할 때에만 법의 보호를 받는 게 현실이다. 비극을 막기 위해선 행위 지속성이 아닌 가해자가 보이는 위험성에 초점을 맞춘 사법당국의 적극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해자 인권 피해 논란이 있을지라도 구금 등 강력한 잠정조치가 이뤄져야만 할 뿐 아니라 구속수사 확대도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할 때다. 사법당국은 피해자 안전 중심 법 집행에 정려(精勵)하고, 정부는 직접 관리·감독하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 및 예방센터 운영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작금의 느슨해진 우리 사회 치안 안전망은 경찰 지휘부 공백으로 경찰 기강이 해이해진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인천 송도 사건에서의 경찰 직무 태만은 심각하다 못해 국의 여망에 실망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의 매뉴얼(Manual)에 의하면 위급상황 최고 단계인 ‘코드 제로’에서 지휘관은 현장에 곧바로 출동해야 함에도 무전으로만 현장을 지휘하다 신고 후 72분이나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해당 간부는 지침조차 몰랐다고 하니 더욱 한심스럽고 개탄스럽다. 최근 강력 사건 빈발과 치안 불안에도 경찰 지휘부는 계엄·탄핵 사태를 거치며 장기간 공백 상태다. 조지호 경찰청장이 탄핵 소추되면서 7개월째 직무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서울경찰청장도 5개월째 직무대리 체제다. 정부는 민생 치안을 강화하고, 각종 강력범죄를 근절하고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치안 안전망의 공고한 강화로 억울한 죽음만은 서둘러 막아야만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법무부 장관도 여당 의원이 임명되면서 일각에서 일고 있는 치안의 정치화 우려를 조기 불식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