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침체 속 먹거리 불안과 국민 피로감이 여전히 계속 가중되고 있다. 최근 5년 누적 물가는 16% 오른 데 반해 식품 물가는 누적 상승률이 25%에 달했다. 직장인들의 점심 메뉴인 외식 품목 대부분이 급등하면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 │ 점심 식사+인플레이션 │ 점심값 상승)’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1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0년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했다. 반면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는 124.56으로 약 25%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116.27로 16% 오른 것과 비교하면 외식 물가 상승 속도는 1.5배에 이른다. 이같이 외식 물가지수는 지난해 11월 122.22, 12월 122.45, 1월 122.89, 2월 123.41, 3월 123.80, 2025년 4월 124.36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올해 2%대 초반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월 들어 다시 1%대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외식비 등 개인 서비스와 가공식품 가격은 오름세를 이어갔다. 지난 6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로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이 1%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12월(1.9%) 이후 5개월 만이다. 하지만 서비스 물가는 2.3% 올라 전체 물가를 1.29%포인트 끌어올렸다. 외식은 3.2%나 오르면서 전체 물가에 0.46%포인트, 외식 제외 개인 서비스는 3.1% 올라 0.62%포인트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구입 빈도가 높아 가격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144개 품목으로 이뤄진 생활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2.3% 올라 2% 상승세를 유지했다. 품목별로 보면 축산물 물가가 35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돼지고기(8.4%)와 국산 쇠고기(5.3%)가 많이 올랐고, 수입 쇠고기(5.4%), 계란(3.8%) 등도 상승 폭이 컸다. 가공식품 물가는 4.1% 오르면서 전체 물가를 0.35%포인트 끌어올렸다. 빵 6.4%, 커피는 8.4% 올랐다. 서비스 물가는 2.3% 올랐는데, 외식 물가 상승률이 3.2%를 기록했다. 외식 제외 개인 서비스 물가는 3.1% 상승했다.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이른바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랐다. OECD 방식의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0% 상승했다.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2.3%로 집계됐다.
이렇듯이 우리나라 식료품 물가가 스위스를 빼고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견줘 50% 가까이 높고, OECD 회원국 가운데 스위스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15일 OECD와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가 지난 4월 발표한 각국 구매력평가(PPP) 결과를 보면, 지난 2023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구매력평가를 고려한 식료품 물가지수’는 149로 나타났다. OECD 38개 회원국 평균(100)보다 49% 높다는 뜻이다. 스위스의 16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으며 미국(93), 일본(130), 영국(86), 독일(108)에 비해 훨씬 높다. 국민 생계비에서 비중이 큰 식료품 물가가 다락같이 높으니 경제적 삶의 질이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다.
최근 가공식품이나 외식 가격 동향을 보면 기가 찰 뿐만 아니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심각하다. 농심은 지난 6개월 사이 용기면과 봉지면 약 20종의 가격을 올렸다. 인상률은 10% 안팎이다. 개당 2,000원 가까운 라면이 농심에만 10개 넘는다. 오뚜기와 팔도 역시 라면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오뚜기의 인상 횟수는 알려진 것만 네 번이다. 동서식품도 국민 커피 맥심 모카골드 가격을 6개월 사이 두 번이나 올렸다.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김밥 가격은 4,000원에 육박한다. 라면에 김밥 한 줄 먹는데 6,000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계란 마저도 한 판 가격이 4년 만의 최고치인 7,000원을 돌파하는 등 이상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식료품 물가 고공행진이 경기변동이나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국내 식료품 물가가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높은 것은 저조한 농업 생산성과 고비용 유통경로 등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정책이나 품목별 수급 조절 같은 단기적 시장개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은 생산과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걸쳐 공급과 수요 양 측면의 탄력성을 높이는 종합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식료품 물가는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외식비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이 올해 1분기 29.2%에 이르러 2019년 이후 1분기 기준으로 가장 높다. 이 비율은 저소득층일수록 높아 하위 20%에서는 32.5%를 기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의하면 가족 단위 외식에 지출된 월평균 비용이 2021년 11만 400원에서 지난해 14만 3,800원으로 3년 새 3만 3,400원(30.3%) 증가했다. 한국경제인협회 여론조사에서는 70% 이상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사항으로 식료품 물가 상승을 꼽았다.
유치원생 아들 손을 잡고 장을 보던 주부가 “아이가 계란을 좋아해 아침마다 식탁에 올리는데 요즘은 사주기가 부담스러워 망설여진다”라는 하소연은 안타까움을 넘어 고물가 시대의 애환과 아픔을 반영하는 슬픈 경제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지난 6월 8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관측 6월호’ 보고서를 보면, 농경연은 오는 8월까지 석 달간 예측값을 발표하며 이달 계란 산지 가격이 특란 10개에 1,850~1,950원으로 1년 전보다 12.4~18.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를 제외한 3년 평균인 평년 가격보다 9.9~15.8% 높은 수준이다. 가격 상승의 배경으로는 산란계의 고령화와 저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전염성 기관지염(IB), 가금티푸스 등 질병 여파로 계란 생산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탓에 가격을 잡기에도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한산란계협회는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계란 산지 가격을 한 개에 146원에서 190원까지 약 30% 인상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달 특란 기준 한 판(30개)의 소비자 가격은 7,026원으로 2021년 7월 이후 4년 만에 7,000원을 넘어섰다. 1년 전보다 6%, 평년보다는 4.2% 높은 수준이다. 계란 가격이 치솟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금란(金卵)’이라며 호들갑을 떨어 왔지만, 계란 25개에 1만 4,000원이라고 하니 올라도 너무 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기 경제불황으로 가계 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는 현 상항에서 그나마 서민들의 건강을 지탱해 주고 있는 계란 사서 먹기 마저 어려워진다면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만사를 제쳐놓고 계란을 비롯한 서민 밥상 물가 잡기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지난 6월 16일 출범하는 계란 가격 안정화 민관협의체의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되면 폭우(暴雨)와 폭염(暴炎) 등으로 채소 가격이 폭등할 수 있다. 이상기후 영향을 받게 되면 가을에는 사과, 배 등 과일값도 크게 오를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해 보인다. 물가 안정은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다만 잘 알고는 있지만 생각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가공식품은 정책을 통해 물가 관리가 어느 선까지는 가능하겠지만, 날씨의 영향을 받는 농산물, 수산물은 관리에 한계가 있다. 물가는 원자재 가격과 금리, 수요와 공급, 날씨, 이윤 폭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결연한 의지 여부다.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구체적 방안을 하나씩 실행에 옮겨 나가면 유통업계도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지 못할 것이다.
새롭게 출발하는 이재명 정부가 명심할 사항은 국민의 47%가 새 정부 최우선 과제로 ‘경제위기 극복’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 4일부터 7일까지 18세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웹 조사(응답률 40.2%)에 따르면 “새 정부가 집권 직후 추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7%가 1순위로 ‘경제위기 극복’을 꼽았다. 이어 계엄 사태 진상규명 및 처벌(16%), 국민통합(15%), 국가 안보 강화(6%), 정치 타협 복원(4%), 개헌 등 정치 개혁(3%) 등이 뒤를 이었다. 경제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 데는 지난 3년여간 경제가 나빠졌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물가 안정’이 ‘경제위기 극복’의 출발점이자 지름길이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는 만큼 새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결단코 안 된다. 새 정부는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기를 바란다. 서민 생활이 안정을 찾아야 국민이 편하게 생업에 매진(邁進)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만 한다. 대통령이 직접적·지속적으로 물가를 챙겨 서민의 주름살을 펴 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