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경제를 떠받드는 수출과 내수 모두 적색 비상등이 선명하게 켜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우리 수출에 본격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월 1일 발표한 ‘2025년 5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출은 전년 동월(580억달러) 대비 1.3% 감소한 572억7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수입은 전년 동월(531억달러) 대비 5.3% 감소한 503억3000만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는 69억4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5월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3%나 줄어들며 지난 1월 이후 4개월 만에 ‘플러스(+) 행진’을 멈췄다.
지난달 조업 일수를 고려한 일 평균 수출액은 26억6000만달러로 1.0% 늘어나, 올해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전체 감소세가 제한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올해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전체 수출 비중의 ‘빅(Big)2’를 차지하는 미국이 18.8%, 중국이 18.2%로 이들 두 나라가 37%를 차지했으나 지난 5월 기준 는 중국이 19.7%, 미국이 16.6%로 36.3%를 기록하며 우리나라의 수출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그간 우리 수출의 중심축으로 자리해온 대미국 수출은 쪼그라들고, 유럽과 중국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수출 전략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이어진다. 물론 수출의 다변화를 위하여 청신호일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들 양대 수출 시장인 미국·중국 두 나라에 대한 수출은 8% 이상씩 급감했다. 지난달 대미(對美)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1% 감소했다. 대(對)중국 수출이 104억달러(-8.4%↓), 대(對)미국 수출이 100억달러(-8.1%↓)로 모두 감소했다. 아세안 수출도 소폭 하락(-1.3%↓)했다.
문제는 1위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21.2%나 늘어나면서 5월 기준 역대 최대인데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을 그저 연휴로 인한 조업 일수가 적었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어서다. 중국 제조업이 글로벌 시장을 급속히 잠식해가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발(發) ‘관세 충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4월부터 25%의 품목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자동차는 대미(對美) 수출이 무려 32%나 줄었다. 3월부터 25% 품목 관세가 매겨진 철강 역시 대미(對美) 수출이 20.6% 감소했다. 수출 부진은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5대 수출 품목 중 10종, 10대 수출 품목 가운데 7종의 실적이 다 감소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서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수출이 막힌 중국산 석유화학, 철강 제품이 세계 시장에 쏟아지면서 한국 제품 수출 판로 자체가 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미(對美)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는 직격탄을 맞았다. 5월 들어 대미 수출이 32.0% 급감하면서 전체적으로는 62억달러로 4.4% 뒷걸음질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앞서 미국이 25%에 달하는 품목 관세를 발효한 4월에도 우리 업체들이 재고 소진에 집중한 결과 19.6% 감소했었다. 이들 업체는 앞으로 관세를 피하려고 미국 내 생산을 크게 늘릴 것으로 전망돼 국내에선 조업 단축 등 생산 위축까지 우려된다.
우리나라 교역 환경은 날로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미·중 통상 전쟁 등의 여파로 올해 세계 상품 교역량이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은 2.1% 감소하고, 특히 자동차 수출은 8%나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수출이 성장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는데 수출마저 부진하면 0%대 성장을 면한 길이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9일 ‘5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1.5%에서 0.8%로 0.7%포인트나 대폭 하향 조정한 것으로 잠재성장률 2.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 5월 14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0.8%로 전망한 바 있다. 외국 투자은행(IB)들도 그 이전부터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지난 5월 11일 국제금융센터 집계를 보면, 주요 외국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 값은 4월 말 기준 평균 0.8%로 나타났다. 지난 6월 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주요 국내외 전망 기관 41곳 중 21곳(51%)이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을 0%대로 내다봤다. 프랑스 3대 은행 중 하나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에서 0.3%로 크게 낮추면서 가장 낮은 전망치를 제시했다. 성장률 전망치도 낮지만, 하향 조정 폭도 가파르다는 게 더욱 심각성을 더한다.
내수는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상품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불변지수 기준)의 지난 1∼4월 평균은 작년 동기보다 0.2% 줄어들었다. 1∼4월 기준 2023년(-1.4%↓)과 지난해(-2.0%↓)에 이어 3년 연속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했다. 서비스 소비는 최근 들어 내수 기여도가 크게 떨어졌다. 1∼4월 서비스업 생산은 0.3% 느는 데 그쳐 코로나 19 팬데믹 여파가 있었던 2020년(-1.4%↓)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건설경기도 줄도산 우려로 7월 위기설까지 등장할 만큼 부진의 늪이 깊다. 지난달 생산·소비·투자가 다시 나란히 감소했다. 산업 활동을 구성하는 3대 지표가 한꺼번에 줄어든 것은 지난 1월 후 석 달 만이다. 그야말로 경제가 백척간두(百尺竿頭)의 벼랑 끝이다.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생산(전산업 –0.8%↓)·소비(소매판매 -0.9%↓)·투자(설비투자 -0.4%↓)가 모두 동시에 전월 대비 줄어드는 ‘트리플(Triple) 감소’가 나타난 것은 1월 이후 석 달 만이다. 내수 경기 지표도 부진을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가계 씀씀이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도 전달보다 0.9%나 줄었다. 3월(-1.0%↓)부터 두 달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서비스 소비를 보여주는 서비스업 생산은 도소매(1.3%↑) 등에서 증가했지만 전문·과학·기술, 금융·보험 부문이 줄며 전월보다 0.1% 감소했다. 소매판매 감소는 지난 3월(-1.0%↓)에 이어 두 달 연속 이어졌다.
가뜩이나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수출까지 부진하면 우리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선거 당선과 동시 출범하는 새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수출·내수 부진에서 탈출하도록 경제 활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당장은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재편성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한 달 전 의결된 13조8000억원의 ‘필수 추경’이 집행 중인 데다 지난달 단행된 금리 인하 영향도 살펴봐야 하는 만큼 2차 추경의 규모는 신중히 판단해야만 할 것이다. 더불어 용처도 소상공인자영업, 사회간접자본(SOC)·건설업, 중소 수출기업 등 그간 효과가 검증된 사업으로 제한하는 게 마땅하다 할 것이다.
당연히 수출대상국의 다변화·다각화와 수출 품목의 다양화의 필요로 있다. 지난 5월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우리 제조업 국내 및 해외 수요 의존도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의 미·중 수요 의존도가 24.5%에 달한다”라며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 우리 제조업 생산에 큰 차질이 우려된다”라고 경고했다. 수출 엔진 출력이 떨어지자마자 ‘내수 불황’이라는 민낯이 송두리째 그대로 드러나 보여주고 있다. 침체일로(沈滯一路)로 치닫고 있는 수출과 내수에 지속 가능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산업 경쟁력을 일신해 반도체·자동차를 넘어서는 신성장 동력을 키우는 한편 저출생·고령화에 대비한 연금·노동 개혁 등 구조 혁신에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이를 위한 국민·기초·퇴직·직역연금의 구조개혁, 정년을 초과한 계속 고용,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유도, 고급 외국 노동력 유치 등 새 정부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보다 근본적 ‘내수 회복’ 비법은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과 자영업을 구조 조정하는 것만이 첩경이다. 그런 토양 위에서 새로운 산업의 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여 새로운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이도록 새 정부는 경기 부양에 최우선을 두고 총력 경주해야만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차기 정부는 전 정부로부터 바로 협상 바통을 넘겨받게 된다. 새 정부는 통상 라인을 하루빨리 정비해 협상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국가 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치밀하고 정교한 협상 전략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협상 결과가 도출되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수출 감소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정교하고 치밀한 ‘윈윈(Win-win)전략’을 마련하고 제시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는 규제 철폐, 노동 개혁 등을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수 부진 지속에 5월 수출 역(逆)성장의 최악의 위기상황임을 각별 유념하고, 새 정부는 국가 진운(進運)의 명운(命運)을 걸고 경제활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