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공사 이면엔 불법 하청·'복마전' 재개발 비위
책임자 법정 공방 되풀이···행정 처분 무력화 위기
유족 "참사 트라우마 치유하고 후대 교훈 남기자"

광주 학동 재개발 4구역 정비사업 현장에서 철거 중 무너진 건물이 버스를 덮쳐 17명을 사상케 한 참사가 3년째를 맞았다.
수사 과정에서 주먹구구 날림 철거 공사와 재개발 복마전 비위가 드러났지만 원청 HDC현대산업개발(현산)과 하청사들은 법정에서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행정처분 역시 '솜방망이'에 그칠 위기다.
3년째 상흔이 아물지 않은 유족들은 트라우마 치료와 참사 교훈을 되새길 추모 공간 조성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다.
참사 관련 직접 책임이 드러난 현산·하청·재하청사 관계자 등 7명과 법인 3곳은 광주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법인을 빼면 ▲ 현산 임직원 3명 ▲ 하청사 한솔 직원 1명 ▲ 불법 재하청사(다원이앤씨·백솔) 임직원 2명 ▲ 감리 1명 등 총 8명이 업무상과실치사와 건축물관리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현산 현장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벌금 500만원을, 공무부장과 안전부장은 각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감리와 하청·불법 재하청사 관계자는 각기 징역 1년 6개월~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불법 이면 계약으로 공사에 관여한 다원이앤씨 현장소장에게도 금고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1심은 당초 예정된 해체 계획을 지키지 않은 점, 성토체 건물 전체·하부에 안전성 검토 없이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은 점, 버스 승강장 이전 조치를 하지 않은 점 등을 토대로 이들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현산에는 해체 작업 시 사전 조사, 작업계획서 작성·준수, 붕괴 위험 시 안전 진단 의무만 있다고 판단했다.
검사와 피고인들 모두 양형이 너무 가볍거나 무겁다며 항소했고, 지난 2022년 12월부터 열린 항소심은 1년 6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현산과 하청사 간 책임 공방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뜨겁다. 항소심 다음 재판은 오는 7월18일 열린다.
참사 배경 중 하나였던 불법 재하청 계약 수주 금품 로비에 연루됐던 철거 하청사 대표·직원들과 전직 재개발 조합장 역시 각기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사전 계약 정보를 주고받은 혐의로 가장 늦게 기소된 현산과 현산 도시정비 담당 임원과 하청사 대표도 다음달 12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검찰은 현산에 벌금 1억원, 현산·하청사 관계자에게는 징역 2년을 구형한 바 있다.
'복마전' 재개발 비위에 암약한 5·18유공자단체장 출신 브로커에 대해서만 징역 4년·추징금 5억원의 형이 확정됐다.
행정 처분 역시 '솜방망이'에 그칠 공산이 크다. 서울시는 학동 참사의 책임을 물어 현산에 '부실 시공'과 '하수급인(하청사) 관리 의무 위반'으로 각각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현산은 하청 관리 의무 불이행에 대한 행정처분 변경을 요청, 과징금 4억623만여원으로 갈음했다.
부실 시공 관련 처분에 대해선 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된 상태에서 현산이 처분 취소를 다투는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사업도 진척이 더디다.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타고 있던 시내버스 차체를 영구 보존, 참사 교훈을 되새기자고 광주시에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시기·장소 등 구체적 보존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무엇보다도 부상자와 유족부터 현장 수습을 도운 소방·경찰·행정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당사자들에게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현산이 비용 부담 주체를 맡는다는 전제로 전담 치료기관 설립을 시에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