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과 28일 만남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은 새 정부 들어 계속돼온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날 오찬에서 박 대통령이 내내 강조한 것은 경제 활성화와 기업투자 요구였다. 상대적으로 대선 당시 경제분야의 핵심 화두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지나치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득하는 정도의 수준만 언급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정부를 믿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달라"고 말하는 등 수차례 경제 활성화를 언급하면서 기업의 역할을 당부했다.
대신에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한층 목소리를 낮췄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입법 과정에서 많은 고심이 있으신 것으로 안다"며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너무 많은 입법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본의 아니게 경제에 찬물 끼얹는 입법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냈다.
특히 최근 재계가 반발하면서 논란이 돼온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서도 기업들의 입장을 좀더 고려해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집행임원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재계는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해왔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지금 논란이 되는 상법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잘 알고 있다. 그 문제는 정부가 신중히 검토해서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반영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울러 규제 완화에 대한 부분도 재차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필요없는 규제는 완화해드리고 이렇게 해서 적극 나서실 수 있도록(하는 것이), 그게 손에 잡히는 경제 활성화"라며 "규제를 위한 규제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이날 오찬 발언은 경제 활성화와 규제 완화 등 대부분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발언들로 일관됐다.
대신에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당부하는 요구를 내놨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할 테니 기업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를 약속해달라는 내용이다.
이는 하반기 국정 성과 창출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최대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만큼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를 통한 국면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재계에 내놓은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들로 인해 그동안 지속돼온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이 또다시 거세질 가능성도 있을 전망이다.
이날 박 대통령의 발언들은 경제민주화 후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초 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실장단 오찬에서도 "중요 법안이 중점으로 하는 게 7개 정도였는데 6개가 이번에 통과가 됐다. 그래서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누구를 누르고 옥죄는 게 아니다"라거나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하면서 경제민주화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이날 오찬 분위기에 민주당도 즉시 "오늘 간담회는 한마디로 박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포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자리"라며 비판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은 특히 재벌 총수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게 해서 경제민주화 입법의 핵심으로 꼽히는 상법개정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며 "경제민주화를 포기할 테니 대기업 투자를 늘려달라고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