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가 여야 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안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한미 FTA 발효로 인해 정부의 공공정책 주권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법, 상생법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정책들이 한미 FTA에 위반되는 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ISD에 따라 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의 정책으로 손실을 입은 경우 국제중재판정부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버핏세'(부유세)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세의 최고 구간과 최고 세율을 신설하고 증권소득과 이자소득을 과표에 합산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조세정책은 투자자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런 정책 대안들의 협정위반 여부도 계속해서 관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버핏세 도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으로 해석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조세 부과는 일반적으로 수용(투자자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정부의 조치) 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미 FTA 부속서 '과세 및 수용' 조항에 따르면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의․원칙과 관행에 합치하는 과세 조치는 수용을 구성하지 않는다.
비차별적 납세(특정 납세자를 겨냥하지 않은 납세)는 수용을 구성할 가능성이 적다고 규정돼 있다.
특정 업체나 특정 투자자에게만 해당되는 과세조치는 협정 위반 소지가 있지만, 특정 소득계층에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세정책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또 한미 FTA는 정부의 과세조치에 대해 투자자가 중재를 청구할 경우, 한국과 미국 당국이 수용인지 여부를 함께 검토하는 절차를 두고 있어 완충 장치가 하나 더 존재한다.
하지만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남희섭 변리사는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 정부의 정당한 과세조치를 외국 투자자가 공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남 변리사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과세조치로 인한 손실을 감내하기 싫다면 얼마든지 중재 청구를 할 수 있다"며 "세금을 부과했을 때 협정 위반인지 아닌지는 중재판정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부의 과세조치가 중재판정부에서 패소한 경우도 있다. 1970년대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사탕수수 재배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을 사용한 음료에 대해 20%의 소비세를 부과했다.
이후 HFCS(Cargill)를 사용하는 미국의 카길 사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중재를 요청했고, ICSID는 멕시코 정부에 7730만 달러 배상을 주문하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ISD 때문에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의 폭이 좁아지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