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온 귀순자를 대대적으로 환영한 시절이 있었다. 북의 대기근 이후 단지 배가 고파 국경을 넘는 이들의 존재가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탈북자의 존재는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원죄처럼 따라다닌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아무리 이들의 존재를 모른 척해도 때만 되면 나타나 존재를 환기시킨다. '새터민', '꽃제비', '굶주리는 사람들', '브로커에게 돈 뜯기고 인신매매까지 당하는 처참한 사람들' 이다.
'오래된 약속'은 탈북자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뒤엎는다. 이 책 속의 탈북자들은 뉴스 보도처럼 무구한 동정심을 끌어내지도 않고, 대북정책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두 정치적 진영이 만들어낸 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남녀들도 아니다.
1997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당시 탈북자 13명이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집단으로 망명 신청을 했으나 한국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정치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그저 배가 고파 국경을 넘은 이들은 제3국을 통하면 받아주겠다는 한국정부의 언질을 받고 정말로 제3국으로 밀입국, 그곳 한국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했다. 13명의 존재가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이들이 한국 대사관을 나와 제3국 국경에서 실종된 후였다. 한국언론은 이들의 실종을 크게 보도하면서 한국정부의 비인도적 처사를 비판했다.
이들은 북한 식량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망명 신청을 한 사람들이었고 또 한국 사회에 북한의 대기근을 알린 최초의 사람들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대기근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자'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작가는 "남과 북의 체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쓴 게 아니다. 두 체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 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분단 구조에서 살아가는 한반도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개인들이 분단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윤정은 지음, 328쪽, 1만2000원, 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