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부재’ 삼성, M&A시장서 뒷짐만…구글·애플 잰걸음

예정된 2심 재판결과에 따라 리더십 부재가 장기화할 수 있어

2018-02-04     최형규 기자
▲ <뉴시스>

삼성전자가 ‘운명의 날’을 하루 남겨두고 있다. 오늘 17일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지 1년을 맞는 가운데 5일 예정된 2심 재판의 결과에 따라 리더십 부재가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은 “졸면 죽는다”말이 나올 정도로 급변하는 IT(정보기술) 및 전자업계에선 그 자체로 큰 리스크다. 지난해 비록 사상 최대라는 외형적 실적을 거뒀지만 ‘리더십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지면서 장기 전략 부재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들이 밀려들면서 경영환경은 두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는게 재계 리더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이종 기업의 글로벌 리더들이 공격적인 인수 합병(M&A)과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자체 생태계 구축 및 합종 연횡에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삼성만 대외신인도 급추락을 겪으면서 총수급 교류가 단절돼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반도체가 활황이라지만 올해를 지나면 어찌될지 장담하기 어렵고, 스마트폰도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조차 위기를 맞고 있다. 초연결 시대 경쟁력의 첩경으로 일컫어지는 글로벌 M&A시장에선 뒷짐만 진채 시간을 허송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기술흐름을 따라잡고 리드하면서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발빠르게 해외 네트워크 형성에 공을 들여야 할 시점에 “의사결정을 총 지휘할 리더십의 부재가 뼈아프다”는 말이 재계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정형식)는 오는 5일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측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선고 공판이 진행된다. 앞서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선고에선 이 부회장에 대한 형량이 줄어들지가 재계의 관심사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된 채로 재판을 치르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일 때 가능하다. 이에 항소심에서 2년이 감형되지 않으면 삼성의 총수 부재 사태는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글로벌 M&A(인수합병)은 물론 대규모 투자 등 미래먹거리 확보와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핵심적 경영 활동이 이 부회장의 부재로 정상가동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특히 눈 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으로 업계를 선도하기 위한 경쟁이 더없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텔,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공룡들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M&A에 힘을 쏟고 있는 상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변화 추세가 ‘퀀텀점프(대약진)의 기회’인 동시에 ‘도전’일 수밖에 없다.

윤부근 삼성전자 CR(대외관계) 담당 부회장이 “어선의 선단에서 선단장이 부재중인 상황이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거나 사업 구조 재편에 대한 애로 사항이 많이 있다. 워낙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함대가 가라앉는 건 순식간”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다.

삼성이 현재는 승승장구를 하고 있지만 시기를 놓치거나 발을 잘못 딛게 되면 과거 노키아처럼 단숨에 추락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 뒤 삼성전자가 이렇다할 M&A 실적이 없는 것도 이같은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리더십 부재’로 삼성전자에 대한 신용등급은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단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장기간 리더십 부재가 이어지면 M&A 등 중요한 전략적 의사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했고, 피치 역시 “변화가 빠른 전자업계에서 최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전략적 결정과 중요한 투자가 지연돼 장기적 위험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 지휘에 나선 이후부터 굵직굵직한 M&A를 성사시켰다. 

그가 작년 2월까지 총수 역할을 맡고 있는 동안 삼성전자가 진행한 M&A는 14건에 달한다. 2016년에는 한 해 동안에만 1000억원 이상의 M&A만 6건을 성사시켰다.

이 중에는 미래먹거리인 ‘자율주행차’를 위해 사들인 미국의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도 있다. 당시 삼성은 하만을 국내기업 사상 최대규모인 80억 달러(약 9조3760억원)에 인수, 글로벌시장을 놀라게 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를 확보한 이 부회장은 ‘미래먹거리 확보’라는 목적지에 실용적이고 효율적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업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한 셈이다. 시장과 기술의 변화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사업 속도를 안정적이고 빠르게 낼 수 있는 방법은 M&A가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진행된 M&A는 인수 가격이 5000만 달러 미만으로 알려진 그리스 음성기술업체 ‘이노틱스’을 포함해 2건뿐이었다.

작년 11월 50억원 안팎으로 사들인 것으로 추정되는 ‘플런티’가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왔던 국내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반면 구글은 2016년 12월 기준으로 200개가 넘는 회사들을 사들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성사된 M&A 건수는 11건이다. 작년 9월에는 11억 달러(약 1조2463억원)을 들여 대만 스마트폰 제조사 HTC의 픽셀 제조 개발 사업부문을 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왔던 구글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인공지능 스피커 등 소비자와 접점을 이루는 하드웨어 시장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애플은 지난달 4일 캐나다의 스타트업 버디빌드를 인수했다. 앱 개발자를 위한 툴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매출을 2020년까지 2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에 대한 경쟁력 강화 방안은 사장단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지만 M&A, 대규모 투자 등은 총수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삼성의 고민이 커지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