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모럴해저드⑨]'주객전도'…대학 내 시설물 돈벌이 수단 전락
대강당이 당연히 학생들을 위해 지어지겠거니 생각했던 게 큰 오산이었다. 대학측은 강당 대여료로 시간당 60만원에 의자를 빌리는데 개당 1000원씩 추가된다고 했다. 재학생도 외부에서 이용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임씨는 뒤늦게 미아리에 있는 소극장을 빌려 공연을 치뤘다. 오히려 시민회관이나 대학로 소극장들은 절반가격이면 이용할 수 있었다. 임씨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 행사인데도 외부 시설에 의존해야 하는 학교측의 방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학교측에서는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대학 관계자는 "대여료라고는 하지만 사실 난방비와 전기세가 전부"라며 "난방은 선택사항이라 사용하지 않으면 저렴하게 대여가 가능하다"고 일러줬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지어진 한국외대 대강당은 지난해 10월 완공된 이래 학생들이 대관해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대학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공식행사에만 사용됐다고 한다.
입지조건이 좋은 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화여대는 강당과 강의실 이용시 학생들에게 대관료를 받는다. 이 대학 강당은 3시간 기준으로 평일에는 15만원, 주말에는 25만원의 대관료를 지불해야 이용할 수 있다.
또 지난해 리모델링을 끝마친 성균관대 중앙도서관에서는 학생들에게 사물함 이용료를 받고 있다. 1인용 사물함이 6개월 사용기준 4만7000~6만4000원, 2인용 사물함은 4만7000~8만9000원 수준이다. 사물함 위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났다.
이처럼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학생들은 교내시설을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값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학들의 평균 등록금 인하율은 4.2%에 그쳤다. 교내 시설물 증·건축의 부담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비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앙대 재학생인 박모(22)씨는 "내가 낸 등록금으로 만든 건물이 학생들이 아닌 외부인사나 공식 행사를 위해 활용되는 것 같다"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구모(28)씨는 "학생의 등록금으로 지어진 시설물들이 정녕 학생들을 위한 공간인지 모르겠다"며 "교내에 커피숍이나 헬스장 같은 수익시설이 들어서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줄어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나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대학이 동아리 지원금도 적게 주면서 공간 하나 빌리는데도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지난해부터 공동행동을 통해 학교측에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용필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은 "올해 대학등록금이 동결되거나 2~4% 인하에 그쳤다"며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복지인 시설물 이용에도 학교가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학교가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