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의원 보좌관 제도 도입해야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지난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지방분권이 추진되어 왔으나, 그 성과의 대부분은 단체장의 권력집중 심화로 귀결됐다. 오죽하면 '제왕적 단체장'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겠는가. 더구나 최근 3년 사이에 중앙사무 1296건이 지방으로 이양되어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업무 자체도 대폭 증가했다.
여기에 시민들의 행정서비스 요구도 다양화하는 등 지방의회 의정환경 자체가 갈수록 전문화·복잡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장과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권한과 인적·물적 지원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단체장의 권한이 증대되고 집행부의 사무가 확대된 만큼 지방의회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의원 보좌관 제도이다.
서울시의원은 매년 교육청 예산을 포함하여 국가 전체 예산 320조의 10%에 해당하는 31조의 예산과 기금을 심의하고, 전년도 예산집행에 대한 결산검사를 실시하여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한다. 예결산심의 이외에도 연평균 450여 건에 해당하는 조례, 승인, 청원, 의견청취 등의 안건들을 처리해야 한다.
특히 서울시 공무원 1만6000명과 서울시 교육청 공무원 6000여명, 여기에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인력까지 포함하면 수만 명의 고급 인력이 수행하는 복잡다단한 행정업무와 예산, 정책 등을 서울시의원 114명만으로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살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안을 내놓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더구나 서울시의 문제들은 그 내용과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 집단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이다. 서울시의원 개개인이 시정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원 개인의 전문성을 아무리 높인다고 해도 의원 혼자서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방대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방의회와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보좌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해외 대도시 지방의회에서도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개인 보좌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들 대도시의회 의원 1인당 보좌 인력현황을 살펴보면, 뉴욕시의회는 3∼5명, LA의회는 7명, 대만은 4∼6명을 두고 있다. 이외에 일본 도쿄도의회는 1인당 월 600만 원 정도의 정무조사비를 배정하여 의원이 자신의 책임 하에 보좌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베를린 광역의회도 최근 의원 개인 보좌 인력 1인 고용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2004년 지방의원 유급제 도입 당시에도 국민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제도 실시 이후 정치적 역량이 높고 전문성이 뛰어난 인재들이 대거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예를 들면,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서울시의원 중에서 대졸이상 의원의 비율이 80%에 육박하고 있다.
유급제를 통한 유능한 인재의 지방의회 진출과 더불어 보좌 인력 지원이 시작되면서 의정활동에 있어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대 의회에서는 17%에 불과하던 의원발의 조례가 보좌 인력의 지원이 이루어진 7대 의회에서는 45%, 제8대 의회 들어와서는 61%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의원 1인당 조례발의 건수도 도입 전에 비해서 10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만 해도 보좌 인력의 지원을 받은 의회의 철저한 견제와 감시를 통해 낭비성 예산 수천억을 절감했다. 서울시 전체의 0.005%에 불과한 예산으로 이 정도 성과를 냈으니 공식적인 보좌관 제도가 도입되면 그로 인한 성과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지방의원 보좌관 제도 도입으로 의정환경이 개선되면 고급인력의 지방의회 진출이 보다 활발해 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방의회 의정활동의 성과 또한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행안부는 현재 보좌관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조례를 통한 제도 도입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제정된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13조제4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지방의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마련을 규정하고 있다.
지방의원의 전문성, 즉 지방의정활동을 수행하는 전문성의 여러 요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 바로 보좌관 제도의 도입이기 때문에 특별법의 규정이 충분한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제도를 둘러싼 현재의 소모적인 논란을 명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지방의원 보좌관제 도입을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안 중에는 발의된 지 2년이 지난 것도 있다. 그런데도 아직 법안소위에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제18대 국회는 임기 내에 지방의원 보좌관 제도 도입을 위한 지방자치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이제 지방의원 보좌관제 도입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고, 지방의원과 지방의회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