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내주 소환 가능성…김효재 거취 변수

정당법 위반-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 불법지출 혐의 등

2012-02-10     박준호 기자
▲ 국회사진기자단 =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 여비서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25일 오후 박희태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집무를 마치고 국회를 나서고 있다. photo@newsis.com

박희태 국회의장이 사퇴하면서 검찰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돈 봉투 수사가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박 의장은 전날 한종태 국회대변인을 통해 "나와 관련된 문제에 큰 책임을 느껴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며 "(돈 봉투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모두 내 책임으로 돌려 달라. 내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장이 공식적으로 사퇴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검찰 소환이 임박했다는 관측과 함께 수사가 다시 분주해지는 양상이다.

◇先 김효재-後 박희태 소환 수순 밟을듯

박희태 의장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7·3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이날 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검찰의 수사망이 점점 윗선으로 좁혀오는 동시에 소환이 임박해지자 권력을 앞세워 안위를 보존하는 대신 스스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달 5일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전당대회를 1~2일 앞두고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받고 돌려보냈다"며 돈 봉투 사건을 처음 폭로한 지 35일 만에 자진 사퇴를 결심한 것이다.

고 의원은 돈 봉투 안에 현금 300만원과 함께 특정인의 한자 이름 석자가 적힌 명함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이후 정치권 등에서는 돈 봉투 살포자로 박 의장을 지목했다.

고 의원이 검찰에 출석한 지난달 8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박 의장은 제20차 아시아·태평양 의회포럼 총회 참석차 해외 출장을 떠났다. 박 의장은 돈 봉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검찰은 박 의장에 대한 소환을 서두르지 않는 대신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주변 인물에 수사의 초점을 뒀다.

검찰은 박 의장과의 섣부른 정면대결에 앞서 박 의장 측근을 중심으로 외곽수사에 중점을 두면서 돈 봉투 사건의 의혹을 풀만한 결정적인 단서를 찾기 위해 '키맨(keyman)'을 가리는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원내에서는 고 의원실 여비서의 진술을 토대로 검은색 뿔테안경을 쓴 남성으로 지목된 박 의장 전 비서관 고모(41)씨를 먼저 소환했고, 원외에서는 안병용(54·구속기소)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윗선'으로부터 돈 봉투 배달지시를 받고 이를 실행에 옮긴 인물들이다.

검찰은 박 의장이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곧바로 캠프의 윗선이자 핵심 측근들을 겨냥했다. 사실상 박 의장을 간접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지난달 19일 재정·조직을 총괄한 조모(51)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과 공보·메시지 담당 보좌관인 이모(50)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 회계담당자인 함모(38) 국회의장 여비서의 국회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계좌추적과 e메일 송수신 기록, 통화내역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설 연휴기간 내내 압수물 분석에 중점을 둔 검찰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만한 명확한 단서는 잡지 못했다. 박 의장 핵심 측근인 조 정책수석비서관과 이 정무수석비서관을 여러 차례 불러들였지만 이들이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수사도 난관에 부딪혔다. 검찰 수사가 용두사미에 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이 같이 답보상태에 빠진 수사에 물꼬를 튼 것은 박 의장의 캠프에서 활동한 고 전 비서관의 자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주 비공개를 전제로 검찰에 출석한 뒤 새누리당 고 의원실에서 돌려받은 현금 3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당시 캠프에서 재정·조직을 총괄한 조 수석에게 전달했고, 이 같은 사실을 당일 캠프 상황실장인 김효재(60) 청와대 수석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고씨가 기존 입장을 뒤엎고 돈 봉투 배달을 인정한 것은 물론 고 의원실로부터 현금 300만원을 돌려받은 사실을 윗선에게 보고했다고 실토하자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검찰은 당장 박 의장의 '집사' '금고지기'로 불리며 선거캠프에서 재정과 조직 업무를 총괄한 조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9일 소환했다. 검찰이 고씨의 진술내용과 그동안 확보한 물증 등을 내세워 조씨의 혐의점을 확인할 경우 다음 수사대상은 김효재 수석으로 옮겨진다.

김 수석은 캠프에서 '실세 3인방' 중 1명으로 상황실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전대 당시 고승덕 의원실이 돈 봉투를 돌려주자 고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건 인물이기도 하다.

검찰은 일부 구 의원으로부터 한나라당 당협위원장인 안씨가 구 의원 5명에겐 건넨 20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김 수석의 책상 위에서 들고 나왔다는 진술도 확보, 김 수석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검찰 수사의 칼끝은 박희태 의장을 겨눌 것으로 전망된다. 돈 봉투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선 박 의장에 대한 소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검찰은 전대 당시 박 의장이 선거캠프의 수장인 점을 감안할 때 돈 봉투 자금 출처나 조성, 전달 지시 등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을 것으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박 의장은 전대를 앞둔 2008년 2월 라미드그룹으로부터 소송 수임료로 1억원을 받고 이 자금 중 일부를 전대 직전에 현금화해 돈 봉투 자금으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박 의장의 소환시점을 섣불리 단언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박 의장 이전에 김 수석에 대한 수사가 선결돼야 하지만 검찰은 대통령의 측근이자 현직 청와대 수석을 상대로 소환을 통보하는데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 김 수석이 박 의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수석 소환은 구체적으로 검토해 본 바가 없다"면서 "내일 소환자도 전날 밤에 결정해 소환한다. 솔직히 언제 소환할지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박 의장이 사퇴의사를 표명함으로써 검찰이 현직 국회의장 소환에 대한 중압감은 떨쳐버리게 됐지만, 수사단계상 박 의장을 직접 겨누기에는 좀 더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검찰은 총선이 본격화되는 3월 이전에는 돈 봉투 사건을 마무리할 방침이어서 이르면 2월 중순 어떤 형식으로든 박 의장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의장에 대한 수사방식은 그동안 소환조사나 서면질의,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이뤄지는 방안 등이 검토됐지만 국회의장직에서 사퇴함에 따라 소환에 좀 더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박 의장 사퇴 후 수사방향과 관련, "기본적으로 열심히 수사하겠다"며 "물밑에서 열심히 휘젓고 있고 그동안 수사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장관 출신 박희태-검찰 수사팀 머리싸움 치열할듯

박희태 국회의장이 오는 5월29일 임기만료를 앞두고 사퇴 입장을 밝히면서 돈 봉투에 대한 도의적 책임뿐만 아니라 법적 책임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검찰은 박 의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처리 여부나 처벌수위 등 박 의장의 거취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며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돈 봉투 수사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박 의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검찰은 관련의혹과 물증 등을 토대로 박 의장의 혐의 사실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박 의장의 혐의점이 확인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정당법 제50조(당대표경선 등의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따라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당법 50조는 당대표 경선 등에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금품·향응 등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약속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 의장이 라미드 그룹으로부터 건네받은 1억원이 소송 수임료가 아닌 경선과 관련해 모종의 대가성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이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부정수수(제45조), 불법지출(제47조)까지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경선 당시 박희태 후보가 신고한 경선액이 2억이 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박 후보가 300만원씩 245개 당협 위원장에게 전달했을 경우 최소 7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때문에 불법 정치자금의 조성여부와 지출내역 등도 규명대상이다.

다만 검사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박 의장이 풍부한 법률 지식과 정치권 경험 등을 고려할 때 향후 검찰 수사에 노련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사팀 입장에선 혐의 사실 입증과 사법처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박 의장 소환 필요성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박 의장의 사법처리 가능성 등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