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FTA 오락가락 행보 ‘비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잔뜩 고조되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한미 간 결속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미 FTA 폐기를 논의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통상정책 책임자가 부랴부랴 부인하는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미 통상전문매체인 인사이드US트레이드는 6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의회 지도자들과 한미FTA 폐기 문제를 논의한 뒤 이를 폐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의 이같은 결정은 북핵 문제 등 한국과의 단단한 유대관계가 중요한 시점인데다가 의회와 산업계 등으로부터 한미FTA 폐기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폐기를 준비하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인 2일 텍사스 주 휴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에 “그렇다.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대답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사령탑에 의해 곧바로 부인됐다.
언론과 의회, 산업계 등으로부터도 숱한 비난이 쏟아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5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협상 2라운드가 열린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한미FTA 폐기를 지지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일부 수정을 원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폐기를 논의하겠다고 위협한지 사흘 만에 미국정부의 통상정책 사령탑이 이를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같은 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미 결속만이 김정은을 막아낼 수 있다(A united front with South Korea will help deter Kim)’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놀랍게도 이런 순간에 한미 FTA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만일 북한이 한국전쟁을 재개할 꿈을 꾸고 있다면, 한미 간 균열은 김정은을 부추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미국이 한국의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과 전 세계에 보여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미국 공화당의 벤 새스 상원의원(네브래스카)은 2일 성명을 통해 “나는 농민, 목장주들과 함께한다”며 한미FTA 폐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농축산업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액은 11억 달러(약 1조 2325억 원)로, 2012년 5억 8200만 달러(약 6521억원)에 비해 두 배가량 늘었다.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주요 시장이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이날 회원들에게 긴급히 돌린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FTA 폐기 결정을 막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아달라”(all hands on deck)고 당부했다. 전미제조업자협회도 회원들에게 긴급 이메일을 보내 한미FTA 폐기 결정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정부 고위 관리, 의회 의원들, 주지사들을 접촉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축산협회(NCBA) 역시 회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연휴(노동절)가 낀 주말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 상원의원, 주지사, 아니면 누구라도 접촉해 (한미FTA 폐기는) 미국 축산, 농업계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