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재벌' 리치몬드마저 대기업에게 밀렸으니…

2012-02-06     김정환 기자

 가수 겸 산소주의 생명운동가인 이광필(49) 한국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가 서울 홍대앞 '리치몬드 제과점' 폐업과 관련,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 교수는 리치몬드제과점 등을 운영하는 리치몬드산업 권상범(67) 회장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이 교수는 '제과·제빵왕' 김충복(1934~1995)의 사위다. 김충복은 1980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로 주인 이름을 내건 제과점인 '김충복 과자점'을 개업, 인기를 모았다. 작고할 때까지 서울 방배동(본점), 이촌1동, 을지로4가 등 요지에서 직영점 5곳을 운영했다. 업계에서는 그를 '한 세기에 한 번 나오기 힘든 장인'이라고 일컬었다. 대한제과협회장을 3차례 지냈다.

이런 김충복의 수제자가 권 회장이다. 제과명장 제2호인 권 회장 뿐 아니라 명장 1호 박찬회씨 등 2000년부터 정부가 '제과제빵 명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선정한 8명 중 4명이 김충복의 제자다.

이 교수에 따르면, 권 회장은 1980년대에 김충복을 찾아와 일을 배우겠다고 했다. 그의 패기와 열정이 마음에 든 김충복은 권 회장을 제자로 삼았다. 김충복은 권 회장이 독립할 때 '리치몬드'라는 상호를 지어주며 격려했다. 권 회장과 부인인 리치몬드산업 김종수(60) 대표이사를 중매해준 사람도 김충복이다.

이 교수는 "장인이 생전에 '리치몬드제과점 권상범이 내 수제자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스승인 나보다 실력이나 재력에 있어서 모두 성공했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했다"면서 "내게 김충복과자점을 맡기면서 권 회장의 리치몬드제과점을 모범삼아 성공시켜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돌아봤다.

1992년 김충복의 차녀와 결혼한 이 교수는 장인의 뜻을 따라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김충복의 아들을 대신해 1995년 김충복과자점을 이어 받았다. 영국의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돌아온 이 교수는 제과제빵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는 권 회장이 운영하는 리치몬드 제과제빵 학원을 찾았다. 이 교수는 "권 회장이 부담을 가질까봐서 일부러 내가 김충복 선생의 사위라는 것을 숨긴 채 6개월 동안 배웠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충복제과점은 1997년부터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해 1998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교수는 "제과제빵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1997년 IMF 사태가 일어나면서 경제위기가 닥쳤다. 무엇보다 김충복 선생이 없는 김충복과자점은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었다. 결국 가족회의를 거쳐 문을 닫게 됐다"면서 "폐업 당시 미국 하버드 법대에 교환교수로 있던 장모(황선애)와 아내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알기에 이번 리치몬드 홍대점 폐업이 남의 일 같지 않더라"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업계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권 회장은 제과제빵인으로서는 드물게 손꼽히는 재력가"라며 "리치몬드 성산점과 제과제빵기술학원이 있는 서울 성산동 5층짜리 빌딩, 10년 전 내가 다녔던 학원이 있던 서교동 5층짜리 빌딩은 물론,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에 있는 리치몬드제과제빵 상가의 상당한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열정과 노력으로 성공신화를 쓴 권 회장은 모든 업계 종사자들의 모범이고 존경의 대상"이라고 소개했다.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성공한 제과제빵인까지 대기업의 자본에 밀려난다면 다른 제과제빵인들은 대기업의 부속품 밖에 될 수 없지 않겠는가"라며 한숨 짓기도 했다.